전체 글 2045

생각들

작년엔가. 우리집 에어컨 실외기에 비둘기가 와서 그 배설물 때문에 골치라고 아래층에서 민원을 넣어 관리실에서 (비둘기가 앉지 못하게) 뾰족뾰족한 뭔가를 들고 와 실외기 위에 놓고 간 적이 있는데.. 또 다시 같은 내용으로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아래층에 내려가 젊은 여인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사진까지 보여주며 어떤 조치를 원한다. 11층도 있고 12층도 있는데 왜 콕 집어 우리집이라 단정하는지. 창밖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비둘기에게 오지 말라고 부탁이라도 해야 할까. 나도 비둘기만 바라보며 살 수 있음 좋겠다. 그는 2차항암을 마치고 쉬고 있다. 일주일 치료, 2주 휴식. 이런 식이다. 암이 작아졌는지 ct를 찍어보고 싶었으나 의사는 (회진 때)2차로는 변함이 없고 3차 후 찍어보자 한다. 그러면서 ..

삶, 그 풍경 2023.11.11

마지막 연재글

금기를 어긴 사랑 -흑인 오르페와 카니발의 아침- ‘에우리디체 없이 어떻게 사나…’ 글룩의 오페라 에서 메조 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어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오르페우스의 심경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아폴론과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오르페우스는 물의 요정 에우리디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가 리라를 켜며 노래하면 만물이 온순해졌다. 어느 날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하계로 내려가 아내를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저승 왕 하데스는 그의 연주에 감동하여 아내를 데려가되 이승에 닿을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남편을 사랑이 식은 걸로 오해한 아내를 보고 오르페우스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하세계로 떨어진다. 상심하여..

조용한 투병

1차 항암을 마치고 집에 온 지 10일째다. 그는 죽과 간식을 먹으며 묵묵히 견디고 있다. (이어폰을 끼고 소리는 죽인 채 온종일 티비 화면으로 당구와 기타 스포츠를 보는 멀티 태스킹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옛날 죽순이 실력을 되살려 열심히 죽을 끓이고 믹서로 갈아 그에게 먹이고 있는데 그 손놀림은 거의 기계적이다. 반찬은 사골국물과 동치미 국물, 간식은 두유와 요플레, 연시, 바나나, 간 사과와 토마토 정도다. 내과의사는 암환자에게 과일은 쓰레기일 뿐이라며 고기를 먹으라 했다. 그래서 거의 소고기죽과 전복죽을 끓이고 너비아니를 구워 잘게 썰어 먹인다. 단지 삼키지 못할 뿐 의식 멀쩡하고 식욕은 왕성한데 그 공복감이 오죽하랴..ㅠ 다행인 건 어떤 상황에서도 그가 짜증을 내지 않는 거다. 누군가에게 피해..

삶, 그 풍경 2023.10.26

가퇴원

그가 1차 항암을 마치고 퇴원했다. 2차는 2주 후부터다. 의료진 요청으로 첫번째 암 병리 슬라이드를 가지러 삼성병원에 다녀오는데 몸이 안 좋았다. (바로 주는 게 아니고 신청을 해야 했다)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열도 나는 것 같아 간호사에게 열체크를 부탁하니 코로나 검사를 하라한다. 편의점에서 키트를 사다가 자가진단해보니 양성으로 나왔다. (다행히 남편은 음성) 아이러니하게도 병은 병원에서 걸린다. 커튼 너머에서 심하게 기침을 하다 코로나 양성 결과로 병실을 나간 노인이 생각난다.ㅠ 간호사는 옆 침대 환자가 폐렴환자라서 감염되면 안 되니 빨리 집으로 가란다. 그를 홀로 두고 집으로 줄행랑.. 사흘 동안 약 먹으며 침대에 누워 앓다가 5일째 되니 회복이 좀 된 느낌이다. 체중계에 올라서니 2키로가 빠졌다...

삶, 그 풍경 2023.10.18

또 다시 '죽순이'로..

15년 만에 건강겅진을 받은 남자가 있다.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사람들 투성이인 세상인데.. 근 한 달 전부터 밥을 제대로 안 먹어 아디 어프냐고 물어도 대꾸를 안 하던 남자, 다른 일 있냐고 다그치자 몸이 안 좋다고 한다.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오래전에도 입 속에 암덩어리가 보여서야 내게 말 한 남자,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연휴 때라 병원도 못 가고 있다가 연휴 다음날 그를 끌고 병원에 가 위내시경을 했는데.. 식도암이라 한다. 큰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그는 집으로 가자 했다. 더 이상 힘든 수술 하지 않겠다며.. 시간의 힘인가. 나이의 힘인가. 첫번째와 달리 덤덤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병원을 싫어하는 그를 어떻게든 입원시키고 죽이든 뭐든 먹이며 간병하는 게 내 할일..

삶, 그 풍경 2023.10.06

잎사귀 하나/까비르

잎사귀 하나, 바람에 날려 가지에서 떨어지며 나무에게 말하네 '숲의 왕이여, 이제 가을이 와 나는 떨어져 당신에게서 멀어지네.' 나무가 대답하네. '사랑하는 잎사귀여, 그것이 세상의 방식이라네. 왔다가 가는 것.' 숨을 쉴 때마다 그대를 창조한 이의 이름을 기억하라. 그대 또한 언제 바람에 떨어질지 알 수 없으니, 모든 호흡마다 그 순간을 살라.

산다 /다니카와 슌타로

산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곡조를 떠올린다는 것 재채기를 한다는 것 당신의 손을 잡는다는 것 산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짧은 치마 그것은 둥근 천장에 별들의 운행을 비춰 보는 것 그것은 요한 스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감춰진 악을 주의 깊게 거부하는 것 산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 산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고 있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커진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군인이 부상을 입는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