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소현의 영화와 음악이야기

마지막 연재글

아데니움 2023. 11. 9. 15:06

금기를 어긴 사랑

-흑인 오르페와 카니발의 아침-

 

 

에우리디체 없이 어떻게 사나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 메조 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어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오르페우스의 심경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아폴론과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오르페우스는 물의 요정 에우리디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가 리라를 켜며 노래하면 만물이 온순해졌다. 어느 날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하계로 내려가 아내를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저승 왕 하데스는 그의 연주에 감동하여 아내를 데려가되 이승에 닿을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남편을 사랑이 식은 걸로 오해한 아내를 보고 오르페우스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하세계로 떨어진다. 상심하여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그에게 구애하는 다른 여인들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고 리라만 연주하다 질투심에 눈이 먼 여인들에게 돌을 맞고 몸이 찢겨 죽는다.

1959년 브라질에서 제작된 마르셀 카뮈 감독의 영화 <흑인 오르페>는 바로 그 신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다. 브라질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가 극본을 쓴 연극 <Orfeu da Concelcao>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시골처녀 유리디스는 죽음을 연상케 하는 탈을 쓴 남자의 위협을 피해 사촌이 사는 리오로 온다. 어느 날 동네의 인기남 오르페를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축제 전야, 온 동네가 떠들썩할 때 그곳까지 따라온 수수께끼의 남자에게 유리디스가 죽임을 당하려는 순간 오르페가 나타나 그녀를 구한다. 사촌은 유리디스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축제행렬에 내보내지만 그녀는 또 다시 의문의 남자에게 쫓기다가 고압선에 감전돼 죽는다. 절망한 오르페는 주술사를 찾아가 그녀의 영혼과 대화하는데, 유리디스는 그에게 절대 뒤를 보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르페가 뒤를 보게 되고 그녀의 영혼은 사라진다. 오르페는 죽은 유리디스를 안고 어디론가 가는 길에 약혼녀의 돌에 맞아 죽는다.

신화와 영화에서 사랑을 잃은 남자들의 슬픔이 전해진다. 신화는 간절한 사랑, 이별의 슬픔, 금기의 요소들이 대부분이다. 금기를 깼을 때의 비극적 결말은 익숙한 스토리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신화로도 전설로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신은 하지 말라는 금기를 만들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고통을 겪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을 조롱하는 듯하다.

<흑인 오르페>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아카데미에서는 최우수 외국영화상을 수상했다. OST는 보사노바(브라질 대중음악의 형식)의 신으로 추앙받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루이스 본파, 주앙 지우베르투가 참여했다. 처음 영화를 볼 때 갈색 피부의 낯선 배우들도 그렇고, 신화를 리우데자네이루 무대로 옮겨놓은 듯한 원시적 이질감에 집중하지 못했었다. 동시대의 외국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기에. 그러나 그 테마음악 <카니발의 아침Manha de carnaval>은 이 영화의 OST가 맞을까 싶게 세련된 곡이다. 영화를 못 본 사람은 있어도 그 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 버전으로 널리 알려진 명곡이기 때문이다.

 

아침, 내게 다가온 행복한 하루의 너무나 아름다운 아침/태양과 하늘은 높이 솟아올라 온갖 색채로 빛 나네/꿈이 내 마음으로 돌아왔네/ 이 행복한 하루가 끝나면 어떤 날이 올지 몰라/카니발의 아침/기쁨 이 되돌아와 내 마음은 노래하네/너무나 행복한 이 사랑의 아침

 

<카니발의 아침>은 루이스 본파가 작곡하고 루이스 마리아가 작사한 곡으로 엘리제치 카르도주Elizeth cardoso(1920~1990)가 분위기 있게 불렀다. 그녀는 보사노바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목소리가 우아하고 관능적이다. 기타와 허밍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나른하면서도 어딘지 슬픔이 느껴진다. 그러나 가사는 축제의 아침을 맞는 기대감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보사노바는 가벼이 어깨춤을 추게 하는 리듬과 힘을 빼고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가 구름 위를 떠가듯 마음을 가볍게 하는 장르다.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을 들을 때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카니발의 아침>은 일반 보사노바와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편곡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영화 줄거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사노바는 1960년대에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1927~1994)과 주앙 지우베르투(1931~2019)가 발전시켰다. 브라질 음악을 세계에 알린 1세대 음악인들이다. 보사노바 Bossa Nova는 새로운 물결이란 뜻으로 삼바에 재즈가 가미된, 우아함과 시적인 노랫말을 겸비한 세련된 음악장르다.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는 조빔과 콤비를 이루어 수많은 보사노바 명곡을 탄생시켰다. 대중매체에서 자주 들리는 <이파테마의 소녀>도 그의 작품이다.

주앙 지우베르투가 1962년 카네기홀에서 콘서트를 연 후 미국 재즈 뮤지션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후 그는 미국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와 협연하고 앨범도 만들었다. 둘의 콜라보앨범은 음악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브라질 역시 60년대 중반 군부독재가 시작된 후 보사노바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서정적이고 향락적인 음악이 독재체재에 저항하기엔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다.

남미여행을 꿈꿀 때 빠지지 않고 가고 싶었던 나라가 브라질이다. 보사노바를 들으면 먼 이국의 라운지에서 듣는 것 같은 낭만과 설렘을 느낀다. 여행지였던 몰타 어느 호텔 로비의 보랏빛 의자들이 떠오른다. 나의 최애곡중 하나인 조빔의 대표곡 <브라질>은 브라질 그 자체인 곡이다. 축제, 삼바, 밝은 미소의 여인들이 떠오르는 경쾌하면서 관능적이고 세련된 곡이다. 나는 그 곡을 전화기에 장착했다. 내게 전화를 거는 누군가의 기분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에우리디체는 이탈리아 식 발음이다.

 

*<좋은수필 11월호>

마지막 연재글이다.

간병과 글쓰기를 병행하기엔 에너지가 부족하기에..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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