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소현의 영화와 음악이야기

그런 인생-영화 <조커>의 음악들

아데니움 2022. 7. 14. 12:10

그런 인생

- 영화 <조커>의 음악들 -

 

김소현

 

 

회색빛 도시 고담 시에서 코미디언을 꿈꾸는 가난한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은 정신질환으로 상담을 받으며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그의 어머니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그를 '해피'라 부른다. 그에게는 웃음이 멈추지 않는 질환이 있다. 어느 날 전철 안에서 퇴근길 회사원들을 만나고 (그 웃음 때문에) 오해를 사 의도치 않게 살인을 하게 된다. 엉뚱한 상황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춤을 추는 남자, 그 춤은 슬픔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시장의 아들이라 믿었다가 어머니의 피해망상임을 확인하고 어머니를 질식사시키는 아서.그의 우상이었던 코미디 쇼의 거물(로버트 드 니로, 하회탈처럼 얼굴에 주름이 많아 못 알아봤다)도 자신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방송 중에 총으로 쏘고 만다. 그즈음 부유층에 불만이 많던 시민들은 모든 게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시장을 죽이고 광대 살인자에게 열광하는데,

 

영화음악 방송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조커> OST를 듣기만 하다가 영화관으로 확인하러 갔다. 내용도 궁금했지만 그 음악들이 어느 장면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서다. 참 찜찜한 영화다. 주인공의 계속 웃어야만 하는 슬픈 질병과 광대탈의 조화가 묘하다. 언제부턴가 광대 얼굴이 익살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진한 페이소스를 풍기는 천진한 웃음도 뭔가를 숨기는 (슬픔도 포함) 교활한 가면으로 보인다. 본 낯을 드러내기 싫은 존재의 가면.범죄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종종 익살스런 탈을 쓴 유괴범이 풍선을 들고 천진한 아이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그 가면 속 얼굴은 얼마나 추악한가.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를 가리지 않고 습관적으로 웃다가 차츰 악당으로 변해가는 아서 플렉. 그 이후의 웃음은 이미 질환이 아니다. 그도 어쩌면 비루한 실체를 감추고 싶어 광대분장을 한 건지도 모른다. 그의 분장은 익살과 거리가 먼 공포를 자아내는 얼굴이다. 노란색 셔츠와 빨간 수트를 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주름진 손가락에 낀 커다란 보석반지처럼 공허하다. 영화가 폭력을 미화시키고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그래서 영화 아닌가 싶다.

이 영화의 음악감독은 아카데미 음악상에 빛나는 아이슬란드 출신 첼로 연주자 힐더 구나도티르다. 그녀는 영화 대본을 보고 조커에게 연민을 느껴 스코어(그 영화만을 위한 음악)곡을 만들었다 한다. 영화 어디에선가 그녀의 묵직한 첼로 선율이 흘렀겠지만 내 귀엔 단 세 곡만 들렸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That's Life는 조커가 방송국에 가기 위해 머리를 초록색으로 물들일 때 흐르는데 아서가 범죄자 조커로 변화하는 상징으로 보인다. ‘사는 게 그런 거지, 인생은 그런 거야라는 가사 때문인지 조커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그 장면에서 울컥했다.

Smile1936년 무성영화 <모던 타임스> 스코어 곡으로, 찰리 채플린이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한다. 이후 존 터너와 제프리 파슨스가 가사를 붙였고 냇 킹 콜이 처음 부른 이후 많은 가수들이 커버해서 불렀다. <조커>에서는 미국 가수이자 배우인 지미 듀랜트 버전이 흘렀는데 조금은 거칠고 개성 있는 목소리가 영화에 잘 어울렸다. 현실이 힘들고 어려워도 항상 웃노라면 밝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채플린의 메시지이긴 한데.

 

마음이 아파도 웃어요

마음이 찢어져도 웃어요

하늘엔 먹구름뿐일지라도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

두렵고 슬퍼도 웃어요

웃으면 내일의 태양이 환하게 비춰줄 거예요

 

엔딩 크레딧에 흐른 프랭크 시나트라의 Send in the Clown은 뮤지컬 <A Little Night Music>의 삽입곡으로 미국 뮤지컬계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 곡이다. ‘여성의 후회라는 의미로, 여주인공이 한때 사랑했던 남자를 떠나보낸 후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 청혼하지만 거절당하고, 민망한 상황을 수습하려 광대를 부르는 장면에서 쓰였다 한다. 여주인공의 실망과 후회, 한탄과 자책이 서정적이고 분위기 있게 노래에 담겼다.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려고 투입되는 광대를 의미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바보라고 자조적으로 비유한 의미라 하는데, 그녀 마음도 위로하고 듣는 이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느낌의 곡이다. 살면서 광대를 부르고픈 순간이 오는 건 그녀뿐일까. 한국에서는 김연아 선수가 쇼트 프로그램 음악으로 사용하여 유명해졌다. 영화 속 광대를 포괄적으로 표현한 노래가 아닌가 싶다.

 

광대가 어디 있지?

어서 광대를 불러줘요

아 굳이 안 불러도 되겠네요

제가 바로 광대이니까요

 

아서가 클럽 무대에서 스탠딩 개그를 할 때 내가 어릴 때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비웃었다. 지금은 아무도 웃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어느 영국 코미디언의 말을 따라한 이 말은 아마추어 희극인의 자조로 들린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고 말했는데 조커도 같은 독백을 내뱉는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야."

많은 것이 담긴 것 같은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이 당연할 만큼 연기가 좋았다. 나는 배우를 보고 영화를 보는 편인데 조커 이후 그가 출연한 영화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한번 신뢰가 생기면 무조건 믿는 성정 때문인 듯하다. 우울한 조커와 우아한 음악, 그러고 보니 스코어 곡보다는 귀에 익숙한 곡에만 귀를 기울였다. 익숙한 소리가 귀에 가깝고 마음에서도 멀지 않다. 세 곡을 들은 것만으로 이 영화는 내겐 성공이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좋은수필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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