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에는.. 73

ㅡ마르케스 유고소설 {8월에 만나요}

k클래식 '세상의 모든 음악 '작가였던 유선경의 신간 를 구매하며 읽을 만한 소설 없나 보다가 찾은 마르케스 유고 소설 . 나의 로망인 남미여행을 대신할, 제목부터 매력적인 아담한 책이다. 과는 전혀 다른 현대적이고 매혹 가득한 소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중년의 여성 아나 세바스티안 바흐(음악가 바흐와 같은 이름이다)는 결혼 후 27년간 일 년에 한 번 8월에 섬 공동묘지에 묻힌 엄마 묘지에 꽃(글라디올러스)을 놓으러 가서 하룻밤을 묵고 오는데, 소설은 40대 후반인 어느 해 8월부터 섬에서 만난 각각 다른 남자와 밤을 지내고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일은 3년 동안 계속되다 엄마의 유골을 집으로 가져오며 끝이 나는데.. 파묘 중 어머니의 유해를 보며 그녀가 곧 자신임을 느낀다. 해설에는 그 장면이 두..

그 책에는.. 2024.03.24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

이상협.. 그에게는 몇 가지의 직업(?)이 있을까. 아나운서, 시인, 가수,(그는 '에고트립'이란 이름으로 노래를 만들고 활동했다) 디제이, 작가 외에 또 있을지도 모른다. K클래식 방송에서 소개 받고 제목에 끌려 산 책인데 생각과 달리 사람 참 재밌고 매력 있다. 솔직 진솔 엉뚱.. 티비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었을 땐 우월감으로 가득한 차가운 사람일 거라는 느낌이었는데. 역시 섣불리 평가하는 건 위험하다. 애주가에, 삶을 풍성하게 사는, 아집에 가까운 확고한 소신을 가진 남자.. 몰랐던 정보가 많고 공감가는 사유가 좋았다. 술 얘기, 음악얘기, 여행얘기.. 여행이 좋아 공항을 자주 간다는 그.. 기내식이 먹고 싶으면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는다는 그..내 과다.ㅋ 예민한 감각에 반골기질이 있어 ..

그 책에는.. 2023.08.13

류시화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제목)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눈 곧 꽃 필 것이다 그런 사람 봄이면 꽃마다 찾아가 칭찬해 주는 사람 남모르는 상처 입었어도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은 사람 슴결과 웃음이 잇닿아 있는 사람 자신이 아픔이면서 그 아픔의 치료제임을 아는 사람 이따금 방문하는 슬픔 맞아들이되 기쁨의 촉수 부러뜨리지 않는 사람 한때 부서져서 온전해질 수 있게 된 사람 사탕수수처럼 삶이 거칠어도 존재 어느 층에 단맛을 간직한 사람 좋아하는 것 더 오래 좋..

그 책에는.. 2022.10.14

작 별 인 사 /김영하

김영하 신작 소설 「작별인사」를 뒤늦게 사봤다. 전혀 정보 없이 김영하라는 이름만 보고 산 소설의 내용은 (유명 작가의 책은 무조건 사게 된다) 예상 밖으로 휴머노이드(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가진) 로봇 얘기였다. 첨엔 아이고 싶었지만 역시 이름값을 하는 작가답다고 생각했다. 상상이 전혀 상상일 수만은 없는 기까운 미래 이야기.. 그런데 로봇 얘기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 김영하라는 작가의 인간미가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작품이 자신을 숨긴 오락성(?) 글이었다면 이번 책은 어느 정도 나이 든 작가의 인간 존재의 근원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서 온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로봇'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고 작가의 말에 썼는데 방송에서 본 평소 그의 말..

그 책에는.. 2022.09.04

인도 우화집

한 청년이 소총 사격술을 배우기 위해 군사학교에 입학했다. 4년 후 청년은 사격술의 이론과 실기를 모두 익히고 우등으로 졸업했다. 졸업장과 우등 상장을 들고 고향의 부모님 집으로 향하던 그는 어느 낡은 창고 벽에서 백묵으로 그려진 여러 개의 작은 원들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각각의 원마다 정중앙을 관통한 자국이 나 있었다. 청년은 경이에 찬 눈으로 그 원들을 바라보았다. 대체 누구이길래 이토록 뛰어난 사격 실력을 가진 걸까. 단 한 방도 과녁 중앙에서 벗어난 곳이 없었다. 어느 군사학교에서 배웠으며 어떤 성적으로 졸업했길래 이런 놀라운 실력이 가능할 걸까. 한참을 탐문한 끝에 그 명사수를 찾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맨발에 때묻은 옷을 입은 시골 소년이었다. 청년이 소년에게 물었다. "누구에게서 ..

그 책에는.. 2022.02.03

예술의 주름들

요즘 읽고 있는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이다. 시인이 여러 예술작품들을 보고 듣고 쓴 감상문인데 내용도 좋지만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시인이 깊은 사유와 감성, 현란한 어휘로 표현한 글들은 훌륭하지만 (시인만큼은 아니라도 비슷한 글을 쓴 입장에서) 예술작품은 (간접경험보다)직접 보고 들어야 그 느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하튼 많은 정보를 준 좋은 책이다. 머릿글이 좋아서 옮겨본다. 시와 예술 사이의 작은 길 ....... 예술이란 얼마나 많은 주름을 거느리고 있는가. 우리 몸과 영혼에도 얼마나 많은 주름과 상처가 있는가. 주름과 주름, 상처와 상처가 서로를 알아보았고 파도처럼 일렁이며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였다. '색채와 영혼의 주름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틀림이..

그 책에는.. 2021.07.20

류시화 <마음 챙김의 시> 중에서..

정화 봄이 시작되면 나는 대지에 구멍 하나를 판다. 그리고 그 안에 겨울 동안 모아 온 것들을 넣는다. 종이뭉치들, 무의미한 말들, 생각의 파편들과 실수들을. 또한 헛간에 보관했던 것들도 그 안에 넣는다. 한 움큼의 햇빛과 함께, 땅 위에서 성장과 여정을 마무리한 것들을. 그런 다음 하늘에게, 바람에게, 충직한 나무들에게 나는 고백한다. 나의 죄를.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였다. 경이로움에 무관심했다. 칭찬을 갈망했다. 그러고 나서 그곳에 모여진 몸과 마음의 부스러기들 위로 구멍을 메운다. 그 어둠의 문을, 죽음이라는 것은 없는 대지를 다시 닫으며 그 봉인 아래서 낡은 것이 새것으로 피어난다. / 웬델 베리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

그 책에는.. 2021.02.21

리스본행 야간열차/파스칼 메르시어

스위스 베른의 어느 학교에서 고전학을 가르치는 고전문헌학자 그레고리우스는 출근길에 다리에서 투신하려는 (포르투게스) 젊은 여자를 구하고 그녀를 학교로 데려온다. 교실에 앉아 있던 여자는 조용히 나가고 그녀의 코트를 가지고 달려나간 그는 코트 안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한다. 서점에 들어가 책의 주인을 확인하고 기차역으로 달려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리스본행 열차에 탑승한다. 책 제목은 이고 저자는 리스본의 의사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이다. 열차에서 책을 읽으며 그에게 빠져든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 도착하여 책 속의 인물들과 그의 행적을 좇으며 생전의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데... 프라두의 글은 그레고리우스가 평소 애독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버금 갈 주옥 같은 글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책에는.. 2021.01.09

장기하 책 '상관 없는 거 아닌가'

'싸구려 커피'의 가수 장기하가 책을 냈다. 그 노래만큼 그만의 독특한 사유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냉큼 샀다. 호감 가는 연예인의 일상을, 삶을 엿보는 건 재미가 있다. 그래서 한동안 '나홀로 산다' 방송도 즐겨 봤는데.. 글을 보는 동안 그의 노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을 길게 늘여 부르지 않는 그의 창법처럼 솔직 담백한 글들이 이어졌다. 술술 읽힌다. 덕분에 그가 술, 비틀즈 ,여행, 달리기를 즐기는 걸 알았다. 싸구려 커피는 그가 군에 있을 때 만들었다 한다. 그 노래 한 곡으로 십년을 먹고 살았다고..ㅎ 그러나 그는 생각보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의 산문집을 잘 안 보는데)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 말을 자주 쓴다 한다. '생각보다..' 기대가 컸다는? 그러나 음악에 ..

그 책에는.. 2020.11.29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과 산문집 「고백의 형식들」을 샀다. 오래전 그의 글 (남해금산이던가)에서 가족들과 여행 중 장어구이를 먹는데 장어의 눈이 보여 모두 젓가락을 놓았다는 대목이 생각난다 그의 글은 산문도 시처럼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깊은 사유와 시 사랑, 풍성한 언어, 언어들.. 그 정도의 어휘력이 있어야 진정한 문인이 아닌가 싶다.(존경심) 박철화 문학평론가는 '사랑과 고통의 체험을 가진 사람만이 음악을 이해한다'라는 장 클로드 피계(음악학자)의 말을 인용해 이 말이 이성복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말이라 했다. 삶의 비밀의 음악들이 그를(이성복) 통해 울려나오기 때문이라고.. '사랑의 체험은 남의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하고 고통의 체험은 그 말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필..

그 책에는.. 202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