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에는.. 77

'행복하기 위해 행복을 제거하라'

*행복 지우기누구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골몰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목표를 설정해두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그러한 목표들은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해 보인다. 이를테면 잘 먹고 잘 벌기, 잘 자고 건강하기와 같은 것들.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목표더라도 목표 설정의 방식에 따라 그 목표들은 내 마음에 크게 작용한다. 이를테면 뭔가를 얻기보다는 '뭔가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난만은 피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자. 건강하겠다는 생각 대신 아프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보자.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자고 결심하기보다는 욕을 먹거나 비난받지 않겠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머릿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 혹은 행복과 친한 단어들을 지워버리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꽤 ..

그 책에는.. 2025.01.15

김영민 아포리즘 2

남의 글을 비판할 때 자신의 편견과 무식을 광고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남들을 근거 없이 욕하는 경우를 보면 대개근거 없는 자기자랑인 경우가 많다. 합창하듯 자신의 무식을 뽐낸다. 내가 이래 봬도 얼마나 무식한데! 주사위가 기억력이 생기자, 주사위는 사표를 냈다. 더 이상 공정하게 일을 할 자신이 없어요. 탈부착식 양심과 휴대용 광기를 품고 다니는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사람은 인정 욕구 때문에 돌아버릴 수 있다. 누군가 갑자기 지나치게 '지랄'을 한다면, 인정 욕구 버튼이 눌렸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문화적 양서류다. 문화에 질리면 야생을 꿈꾸지만, 야생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다. 다시 문화라는 물에 몸을 적셔야 한다. 미국의 작가 매릴린 로빈슨은 고교 시절 선생이 해준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

그 책에는.. 2025.01.06

김영민 교수 아포리즘<가벼운 고백>

인간은 필멸자다. 따라서 인생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우아한 패배다. 외로울 때가 제정신이다. 누가 마음속 말을 다 할 수 있는가. 하지 못한 말들은 내장 속에서 고이 썩다가 마침내 사리가 된다.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갖는 게 아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희망을 갖는다. 절망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절망하지 않는다. 누구도 희망을 뺏을 수 없다. 자기 한계를 응시하며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계를 느끼기에 미쳐 날뛰지 않을 수 있고, 응시하기에 한계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인간의 대표적 한계는 죽음이다. 나는 먼지 관찰자다. 먼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우주가 있다. 인간이란 이름의 깊은 먼지. 겨울이 오는 것은 겨울의 일, 겨울을 나는 것은 나의 일. 많은 순간이 고..

그 책에는.. 2025.01.04

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 /김훈<허송세월> 중에서

나는 인쇄된 나의 글을 읽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한 생애가 강물같이 흐름을 이루지 못하고, 파편으로 부스러져 있다. 삶을 구겨버리는 그 무질서가 아무리 진지하고 순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려는 과장된 어조와 단정적 서술을, 이제 견디기 어렵다. 책값을 내고 이걸 사서 읽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이 자학적 수치심은 오래된 고질병인데, 증세는 악화 중이다.  사유의 바탕이 성립되지 않거나 골조가 허술하거나 전개가 무리하거나 애초부터 쓸 필요가 없는 것들을 매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형용사나 부사 같은 허접한 것들이 문장 속에 끼어들어서 걸리적거리는 꼴들이 역겹고, 그런 허깨비에 의지해서 몽롱한 것들을 표현하려 했던 나 자신이 남사스럽다. 글 쓰는 자가 문장을 놓아먹이면 글이 웃자..

그 책에는.. 2024.09.20

ㅡ마르케스 유고소설 {8월에 만나요}

k클래식 '세상의 모든 음악 '작가였던 유선경의 신간 를 구매하며 읽을 만한 소설 없나 보다가 찾은 마르케스 유고 소설 . 나의 로망인 남미여행을 대신할, 제목부터 매력적인 아담한 책이다. 과는 전혀 다른 현대적이고 매혹 가득한 소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중년의 여성 아나 세바스티안 바흐(음악가 바흐와 같은 이름이다)는 결혼 후 27년간 일 년에 한 번 8월에 섬 공동묘지에 묻힌 엄마 묘지에 꽃(글라디올러스)을 놓으러 가서 하룻밤을 묵고 오는데, 소설은 40대 후반인 어느 해 8월부터 섬에서 만난 각각 다른 남자와 밤을 지내고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일은 3년 동안 계속되다 엄마의 유골을 집으로 가져오며 끝이 나는데.. 파묘 중 어머니의 유해를 보며 그녀가 곧 자신임을 느낀다. 해설에는 그 장면이 두..

그 책에는.. 2024.03.24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

이상협.. 그에게는 몇 가지의 직업(?)이 있을까. 아나운서, 시인, 가수,(그는 '에고트립'이란 이름으로 노래를 만들고 활동했다) 디제이, 작가 외에 또 있을지도 모른다. K클래식 방송에서 소개 받고 제목에 끌려 산 책인데 생각과 달리 사람 참 재밌고 매력 있다. 솔직 진솔 엉뚱.. 티비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었을 땐 우월감으로 가득한 차가운 사람일 거라는 느낌이었는데. 역시 섣불리 평가하는 건 위험하다. 애주가에, 삶을 풍성하게 사는, 아집에 가까운 확고한 소신을 가진 남자.. 몰랐던 정보가 많고 공감가는 사유가 좋았다. 술 얘기, 음악얘기, 여행얘기.. 여행이 좋아 공항을 자주 간다는 그.. 기내식이 먹고 싶으면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는다는 그..내 과다.ㅋ 예민한 감각에 반골기질이 있어 ..

그 책에는.. 2023.08.13

류시화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제목)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눈 곧 꽃 필 것이다 그런 사람 봄이면 꽃마다 찾아가 칭찬해 주는 사람 남모르는 상처 입었어도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은 사람 슴결과 웃음이 잇닿아 있는 사람 자신이 아픔이면서 그 아픔의 치료제임을 아는 사람 이따금 방문하는 슬픔 맞아들이되 기쁨의 촉수 부러뜨리지 않는 사람 한때 부서져서 온전해질 수 있게 된 사람 사탕수수처럼 삶이 거칠어도 존재 어느 층에 단맛을 간직한 사람 좋아하는 것 더 오래 좋..

그 책에는.. 2022.10.14

작 별 인 사 /김영하

김영하 신작 소설 「작별인사」를 뒤늦게 사봤다. 전혀 정보 없이 김영하라는 이름만 보고 산 소설의 내용은 (유명 작가의 책은 무조건 사게 된다) 예상 밖으로 휴머노이드(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가진) 로봇 얘기였다. 첨엔 아이고 싶었지만 역시 이름값을 하는 작가답다고 생각했다. 상상이 전혀 상상일 수만은 없는 기까운 미래 이야기.. 그런데 로봇 얘기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 김영하라는 작가의 인간미가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작품이 자신을 숨긴 오락성(?) 글이었다면 이번 책은 어느 정도 나이 든 작가의 인간 존재의 근원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서 온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로봇'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고 작가의 말에 썼는데 방송에서 본 평소 그의 말..

그 책에는.. 2022.09.04

인도 우화집

한 청년이 소총 사격술을 배우기 위해 군사학교에 입학했다. 4년 후 청년은 사격술의 이론과 실기를 모두 익히고 우등으로 졸업했다. 졸업장과 우등 상장을 들고 고향의 부모님 집으로 향하던 그는 어느 낡은 창고 벽에서 백묵으로 그려진 여러 개의 작은 원들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각각의 원마다 정중앙을 관통한 자국이 나 있었다. 청년은 경이에 찬 눈으로 그 원들을 바라보았다. 대체 누구이길래 이토록 뛰어난 사격 실력을 가진 걸까. 단 한 방도 과녁 중앙에서 벗어난 곳이 없었다. 어느 군사학교에서 배웠으며 어떤 성적으로 졸업했길래 이런 놀라운 실력이 가능할 걸까. 한참을 탐문한 끝에 그 명사수를 찾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맨발에 때묻은 옷을 입은 시골 소년이었다. 청년이 소년에게 물었다. "누구에게서 ..

그 책에는.. 2022.02.03

예술의 주름들

요즘 읽고 있는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이다. 시인이 여러 예술작품들을 보고 듣고 쓴 감상문인데 내용도 좋지만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시인이 깊은 사유와 감성, 현란한 어휘로 표현한 글들은 훌륭하지만 (시인만큼은 아니라도 비슷한 글을 쓴 입장에서) 예술작품은 (간접경험보다)직접 보고 들어야 그 느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하튼 많은 정보를 준 좋은 책이다. 머릿글이 좋아서 옮겨본다. 시와 예술 사이의 작은 길 ....... 예술이란 얼마나 많은 주름을 거느리고 있는가. 우리 몸과 영혼에도 얼마나 많은 주름과 상처가 있는가. 주름과 주름, 상처와 상처가 서로를 알아보았고 파도처럼 일렁이며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였다. '색채와 영혼의 주름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틀림이..

그 책에는.. 202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