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탁자 비가 오려는지 시야가 온통 잿빛이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박춘삼의 목소리가 유난히 흐느적거린다. '회색탁자 위에 오늘도 빨간 촛불 흔들려….’ 흔들리는 촛불과 함께 나의 눈동자도 흔들린다. '회색탁자'는 수 년 전 인터넷 카페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다.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은 .. 수필 2008.05.16
여자의 색깔 바람 같은 여인이 있다. 언뜻 스치는 눈빛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적당히 부도덕해 보이고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비워진 듯한, 진실 같은 것은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다닐 것 같은, 호감과는 다른 묘한 매력을 풍기는, 남자와 있을 때 더욱 아름다운 그런 여인들. TV화면에서 거리에서 목욕탕에서 그런 .. 수필 2008.01.25
내 안의 A와 B A는 조용한 사람이다. 아니, 그런 말을 주변에서 듣곤 한다. 처음 만날 때 친해지기가 쉽지 않고 마음을 쉬 열지 않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상대가 실망을 주지 않는 한 배신하는 법이 없다. 음식 맛도, 만나는 사람도, 다니는 마트도 한 번 정하면 그대로 고수한다. 성실한 A는 자신이 맡은 일은 치밀하.. 수필 2007.03.07
마녀라 불리는 여인 세계적인 팝그룹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가 내한 해 ‘예스 요코 오노’ 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다. 평소 먼 거리 외출을 귀찮아하는 내가 그녀의 작품 세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폭우를 무릅쓰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의 지하철 여행도 좋았고 도심 한 복판.. 수필 2007.01.20
조용한 가족 조용한 가족 김소현 해가 뜨고, 시계바늘이 몇 바퀴는 돌았음직한 시간인데도 동네가 조용하다. 역시 휴일은 휴일이다. 가족은 각자의 공간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은 거실에서 바둑프로를 보고 있고, 한 사람은 제 방에서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있다. 컴퓨터 과학을 공부중인 아.. 수필 2006.10.28
꽃잎 지던 날 봄날이 간다. 덧없이 보낸 이십대의 청춘시절처럼 짧은 봄날이 가고 있다. 찬란한 계절, 그 밝은 빛 안에서 무기력의 정령이 춤을 춘다. 나는 우두커니 멍한 채로 그 춤사위를 구경한다. 넘치는 햇살에 미안한 마음으로 눅눅한 가슴을 내다 말리며 새로이 희망을 조감해본다.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남루한 의식을 달래주 듯 마침내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내리는 봄비치고는 제법 많은 양이다. 바람을 동반해 참고 억누르던 울분을 토해내 듯, 정서 불안한 여인의 치맛자락 날리듯 그렇게 쏟아지고 있다. 비바람에 꽃잎이 떨어진다. 눈꽃처럼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괜스레 황홀해진다. 보사노바풍의 노랫말이 아름다운 노래 -말로의 를 흥얼거린다. 꽃잎 날리네 햇살 속으로 한 세상 지네 슬픔 날리네 눈부신 날들 가네 잠.. 수필 2006.10.28
내 마음의 검은 돛배 12 아말리아, 당신이 가신 지 벌써 칠 년이 돼 가는군요. 79세를 일기로 당신이 돌아가셨을 때, 포르투갈 정부에서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사흘 동안 애도기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당신의 사망소식은 제게도 충격이었지요. 저는 영화배우 비비안 리가 오래 전에 죽었다는 말을 들은 후로 .. 수필 2006.09.14
일요 시네마 일요 시네마 일요일 오후, 아침을 늦게 먹어 배고프지 않다는 남편과 아이에게 반 강제로 점심을 먹인 뒤 서둘러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영화를 시작하는 시그널이 나오고 광고가 나오는 사이, 차 한 잔을 만들어와 숨을 가다듬는다. 오늘은 어떤 영화일까. 일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EBS 교육방송에.. 수필 2006.08.28
아랑훼즈와 킴 노박 11 그 음악을 들으면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토요일 밤이면 TV에서 애수에 찬 선율이 흘러 나온다. 뭐라 말 할 수 없는 감성의 늪으로 빠지는 듯한 그 음률은 영화의 장르를 불문하고 TV앞에 앉게 만든다. 10년 이상 영화프로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돼 온 '아랑훼즈 협주곡'은 스페인의 작곡가 호아킨 로.. 수필 2006.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