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조용한 사람이다. 아니, 그런 말을 주변에서 듣곤 한다.
처음 만날 때 친해지기가 쉽지 않고 마음을 쉬 열지 않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상대가 실망을 주지 않는 한 배신하는 법이 없다. 음식 맛도, 만나는 사람도, 다니는 마트도 한 번 정하면 그대로 고수한다.
성실한 A는 자신이 맡은 일은 치밀하게 완성시키고 책임을 진다. 강한 자존심 탓에 상처도 잘 받고 감정기복이 있긴 하나 인간관계에서 트러블이 생기면 자신을 탓하며 비관한다.
어렸을 적 A는 국어 선생님 같은 정적인 직업을 꿈꾸었다. 차분하고 내성적인 A는 대체로 조용한 이미지를 유지하며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상식과 관습을 중시하는 A는 튀는 옷차림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고 앞에 나서는 것과 남의 이목 끄는 걸 싫어한다.
평범한 배우자를 만나 그를 위해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기다리는 걸 좋아하고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즐긴다. 어쩌다 친정 나들이를 할 때는 부재한 만큼의 준비를 철저히 한다.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려놓고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야 떠난다. 변화를 싫어하는 A는 변변히 여행 한 번 가지 못하고 안일함 속에 묻혀 산다.
음악은 세미클래식과 서정적인 가요를 선호하며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데보라 카나 그레이스 켈리 같은 배우를 좋아하고, 분위기 좋은 찻집에 앉아 한방차를 마시며 조용히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완벽주의인 A는 파란색 재킷을 입을 때는 검정 바지나 흰색 스커트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란할 때는 요가를 하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체면을 중히 여기는 A는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도 저녁시간이 되면 정확히 일어나 집으로 간다. 남편에게 약점 잡히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노년기에는 전원주택으로 옮겨 나무를 가까이 보며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
B는 빨강을 좋아한다.
변화를 좋아하고 맛과 멋의 감각이 뛰어나다. 늘 꿈같은 여행을 그리며 일상의 삶을 권태로워 한다. 어렸을 적 B는 가수나 배우를 꿈꾸었다. 색깔에 민감하고 입는 것에 신경 쓰는 B는 남들이 하는 평범한 옷차림을 거부하고 차별 두기를 좋아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술 한 잔으로 기분이 좋아지면 B는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남의 이목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을 좋아한다. 음악은 록을 좋아하고 장르불문 크로스오버 월드뮤직을 듣는다. 영화는 멜로물 보다는 긴장과 서스펜스 넘치는 스릴러를 좋아하고, 비비안 리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같은 불같은 성정의 여배우를 흠모한다.
겨울이 오면 B는 산에 올라 헐벗어 떨고 있는 나목을 바라보며 바람에 마른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B는 댄스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을 한다. 이성에게서 관심 받는 건 좋아하나 사랑에는 신중하다. 마광수만큼은 아닐지라도 화려하고 야한 사람을 좋아하는 반면 점잖고 교양적인 사람도 좋아한다.
친구들에게는 껍질 벗긴 바나나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고 진솔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간섭받는 걸 싫어한다. 무난한 성격의 B는 남에게 상처를 받아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감성적인 B는 평범한 삶을 싫어하고 멋진 남성을 만나 영화나 소설 같은 예술적인 삶을 살기를 꿈꾸기도 한다. 늦은 나이에도 일상의 삶을 팽개치고 악기 하나 둘러메고 변두리 카페에서 노래를 하며 살고 싶은 욕망을 키운다.
예술을 사랑하는 B는 다음 생이 있다면 황진이 같은 예인藝人이 될 거라고 다짐한다.
오랜 기간 동거하며 다투기도 하고 양보도 하던 A와 B는 몸을 합치기로 한다. AB가 된 A와 B는 소극적이고 이성적인데다 합리적인 대인관계를 한다. 위선을 꺼려하고 사고는 다양하나 표현을 아끼는 AB는 그래서인지 친구가 없다. 다혈질 기질이 있는만큼 뒤끝은 깨끗하다. 이중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격의 이중성이 아니라 내면에서 번갈아 고개를 내미는 A와 B 때문이다.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A의 완승으로 전세는 꺾이고 B는 조용해졌다.
그러나 한 번씩 불뚝거리며 고개를 드는 B를 달래느라 A는 잦은 한숨을 내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