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팝그룹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가 내한 해 ‘예스 요코 오노’ 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다.
평소 먼 거리 외출을 귀찮아하는 내가 그녀의 작품 세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폭우를 무릅쓰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의 지하철 여행도 좋았고 도심 한 복판에 자리한 넓은 통유리로 지어진 로댕갤러리의 구조물도 아름다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서니 동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르기’라는 작품으로, 다소곳이 앉은 오노의 옷을 다른 사람이 가위로 하나씩 잘라가는 퍼포먼스다. 거의 알몸이 다 되어가는 오노의 얼굴은 시종 무표정하다. 자신과 타인을 구속하는 무언의 폭력에 대한 논쟁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반의 반’이란 작품-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반쪽만 만들어놓고 존재와 부재, 완전함과 불완전함, 육체의 양분을 말한다. 나머지 반쪽은 관객이 채우라는 메시지다.
‘정화’는 두 군데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슬픔을 모으는 돌, 행복을 모으는 돌로 나누어 한 개씩 던져보게 한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은 뭔가 여운을 남겨 관객으로 하여금 참여하도록 유도해 완성시킨다. 이외에도 여러 작품이 있었지만 TV로 보여준 작품이 한 두 가지 빠진 것 같아 아쉬웠다.
일본의 부유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나 부친의 뉴욕지사 발령을 계기로 미국에 진출한 오노 오코가 존 레논을 만나 결혼했을 때, 사람들은 전위예술과 팝음악의 조화라며 큰 관심을 보였지만 그녀는 대 스타인 남편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감성적인 음악을 하는 폴 메카트니에 비해 강한 메시지가 있는 음악을 하는 존 레논과의 견해차로 비틀즈가 해체되자, 팬들은 ‘동양에서 온 작은 마녀‘ 라 칭하며 그녀를 비난한다. 존 레논 생전에 반전운동에 열심이었던 두 사람은 ’전쟁은 끝납니다‘ 라는 캠페인 문구를 소제목으로 각종 평화운동을 벌여 대중적 우상으로 떠오르지만 온갖 기행을 일삼아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대표적인 예로 신혼여행 중에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 침실로 기자들을 불러 잠옷차림으로 ’침대시위‘ 이벤트를 벌여 기성사회에 대한 비폭력적인 저항의 메시지를 논한 사건은 유명하다.
레논은 광적인 팬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지만, 오노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는 오히려 남편의 죽음 후 나타난다. 반전 운동가로, 분단된 나라의 여성들이 그리워 내한했다고 방한 목적을 밝힌 그녀의 나이는 어느 새 일흔이다.
오노를 보면 우리 가수 한영애가 떠오른다. 얼굴 생김새뿐 아니라 분위기도 비슷하다. 작은 체구에 웃음이 없고 무표정하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다분히 록Rock적이다. 일흔의 노년이지만 오노 요코처럼 예술혼을 가진 사람들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진정한 ‘비보통’의 정신세계를 경이로운 눈으로 확인한 전시회장에서 왠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인사동으로 향한다.
비가 내려 노점상이 없는, 조금은 한적한 인사동 거리는 색다른 운치를 느끼게 한다. 손님 없는 지대방 찻집에서 뜨거운 차 한 잔을 홀짝거리며 풍부한 은유가 담긴 오노의 심연을 헤엄쳐 본다. 설명문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그녀의 작품세계를.
도심 속을 분주히 오가는 색색의 우산을 바라보는 것도 비에 젖는 나무를 보는 것만큼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