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 풍경 220

첫눈

눈이 온다. 첫눈이다. 지난번 잠시 흩뿌린 눈은 눈이라 볼 수 없었으니 오늘 내린 함박눈이 첫눈이다. 눈.. 마음을 정화시키고 설렘으로 물들게 하는 신비한 결정체다. 대상 없는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오는..무장해제의 상태로 만드는.. 커튼을 활짝 열고 창밖을 본다. 놀이터엔 어느새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나와 눈장난을 치고 있다. 건강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일찌감치 켜진 아파트 앞 카페의 불빛이 따뜻하다. 코로나만 아니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한 풍경인가.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쉬워 아파트를 나서본다. 눈 맞은 나무들은 그 위에 장식품만 얹으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될 것처럼 소담스레 예쁘다. 단지 앞을 서성이다가 웬지 모를 아쉬움을 안고 집안으로 들어와 김효근의 눈을 듣는다. 불후의 명곡..^^ (지난 토요일 작성)

삶, 그 풍경 2021.12.19

가을 끝자락..

동네 산책길에서 마지막 가을을 잡아본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이리 아름다운 걸.. 빨강, 주황, 주홍, 노랑의 향연.. 곱다고, 예쁘다고 아우성들이지만 나무가 다음 생을 위해 안간힘으로 제 몸을 물들이는 걸 아는지.. 괜스레 눈물겹다. 카페에 들어가 단 커피를 주문한다. 쓰고 담백한 커피만 마셨었는데.. 영혼의 결핍인가..고갈인가.. 집 앞 담벼락에 장미 한 송이..고독인가..고집인가.ㅎ

삶, 그 풍경 2021.11.15

어제는..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종합병원 호흡기 내과에 갔는데 (코로나는 아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완전무장'하고 환자를 맞는다. 진료실도 컨테이너에 별도로 있었다. 진료 중 의사 말이 안 들려 고개를 기울이니 가까이 오지 말라 한다. ㅎ 그러곤 내가 나오자 환기를 한다하며 문을 열었다. 환자가 다가오는 게 두려우면서 호흡기를 택한 건 왜일까. 작은 행동 하나가 환자에겐 상처가 되는 걸 모르는지.. 그나저나 기관지내시경 검사를 하라는데 보호자를 대동하란다. 공포모드.. '남의 편'에겐 말 못하고 아들에게 부탁했다. 음악을 들으며 평정을 유지하려는데..쉽지 않다.ㅠ 비는 왜이리 내리는지.. 가을나무는 아름답게 채색됐지만 이미 생기를 잃었다. 쇠락의 계절이다.

삶, 그 풍경 2021.11.09

휴일풍경

휴일 낮 점심준비를 하다 팔을 데었다. 심하진 않지만 발갛게 부풀었다. 차분해보인다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성격이 급하고 주방에서 특히 덜렁거리는 나.. 약국 몇 군데를 찾았지만 문이 닫히고.. 혹시 편의점에서 화상밴드를 팔까 하여 들렀는데 일반밴드만 있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나오다가 평소 궁금하던 편의점 아이스커피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단지에 단풍이 곱다. 어느새.. 아름다움은 가까이에 있었다. 이사 와 2년 가까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공원처럼 아늑하고 정겨운 공간이 있는 걸 몰랐다.ㅎ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시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무의자에 앉아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붉은 잎 사이 하늘을 바라보다 좀전에 읽은 인도우화집 내용을 되새겨본다. 어떤 것을 바라볼 때는 다만 바라보라 어떤 것을 ..

삶, 그 풍경 2021.10.31

성묘길

다음 주 아버지 기일을 앞두고 미리 성묘를 다녀왔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가을여행이라 할 수는 없고.. 이젠 거의 전용 별장처럼 돼 버린 뷰 좋은 한옥숙소에서 언니와 2박을.. 방문을 열고 주황빛으로 익은 감나무를 보니 나른한 고요 속 비현실적인 행복이 밀려온다. 다음날,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편백나무 숲에 들러 잠시 편멍에 빠졌다.^^ 평상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보며 그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싶었다. 한적한 시골길, 야외연회장 같은 거대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전주에 와 시내를 산책했다. 이젠 쓸쓸한 사물처럼 와닿는 그곳에서 나는 왜 자꾸만 추억을 소환할까.. 이른 저녁, 회색 하늘에 하얀 반달이 무표정하게 떠 있었다. 고요한 묘원, 그 사이 묘가 많이 늘었다. 치유의 숲, 카페에서 내다본 ..

삶, 그 풍경 2021.10.15

오징어 게임

요즘 핫한 드라마 을 봤다. 어릴 때 골목에서 선을 그리고 놀던 추억의 놀이가 영화의 소재가 되다니.. 하지만 동심과는 거리가 먼 잔혹동화를 보는 듯했다.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보며 예전에 읽었던 김동식 소설 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별다른 정보 없이 낮 2시쯤 컴 앞에 앉아 두 시간이면 끝나려니 했는데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퇴근해 온 아들이 중간에 끊으면 재미 없다며 저녁으로 배달음식을 시켜준다. 덕분에 난 피시방에 자리잡은 가출녀처럼 피자를 씹으며 몰입할 수 있었는데..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ㅋㅋ 중간중간 뜻밖의 음악들이 나와서 재미를 더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임을 할 때마다 장학퀴즈 시그널(하이든 트럼펫 협주곡3악장)이 나오는가 하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도 경쾌하게 흐른..

삶, 그 풍경 2021.10.05

어제는

즐겨 듣는 음악방송에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추모 특집 영화음악이 연이어 나왔다. 가 나올 때 몇 년 전 크레타섬에 갔던 추억을 떠올리며 몇 자 썼는데 누군가 '자랑하는 유치한 글'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름은 없었지만 내 글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곳에선 여러나라 음악을 들으며 여행 추억담을 나누곤 하는데.. 왜 굳이 내 글에만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지.. 어이없어 웃고 말았지만 기분은 언짢았다. 남한테 상처를 주면 본인 마음이 더 괴로울 텐데 그런 것도 인지 못하는 사람? 하긴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그랬을 리 없다. 아이디를 보아하니 나이도 지긋한 것 같은데 요즘에도 여행글을 자랑으로 듣는 사람이 있었다. 감정이 무뎌진 건지 몇 분 지나자 불편한 마음도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그것이 문제? ㅋㅋ 3년 여의 게..

삶, 그 풍경 2021.09.19

어제는..

오전에 음악방송 앱 실행 중 전원이 꺼졌다. (배터리가 0도 아닌데) 켜면 꺼지는 일이 두세 번 반복됐다. 폰이 먹통이 되니 갑자기 아득했다. 아들 전번이 뭐였더라? 공중전화는 어디?.. 이렇게 세상과 단절되는구나 싶었다. 충전기를 꽂고 다시 켜니 켜지긴 했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어렵사리 서비스센터를 찾아가 해결은 했지만.. 무한대인 줄 알았던 폰의 능력에 과부하가 걸린 걸까. 종신노예처럼 마구 부리다가 한 대 맞은 느낌? ㅋ 잠시나마 느낀 단절감이 황당했다. 갑자기 정전이 되거나 물이 안 나오는 느낌보다 막막함이 더했다. 잘 모시고 살아야겠다.^^ 어제의 교훈 - 필요한 전번은 별도로 적어둘 것, 이웃집 한 집 정도는 친분을 쌓아놓을 것..^^

삶, 그 풍경 2021.08.21

제대로 산다는 건..

티비 아침방송 인간극장을 즐겨 본다. 평범한(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이번 주는 직장에 다니며 치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젊은 아가씨 얘기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집으로 할머니를 모셔온 것은 억지로, 어쩔 수 없이 감행한 일이 아니고 오직 할머니와 함께하고픈 마음이 다인 듯 보였다. 어릴 때부터 자신과 남동생을 정성으로 키워주셨다는 할머니에 대한 의리와 사랑의 마음일 거다. 남동생 역시 주말마다 집에 와 누나를 도왔다. (어찌된 사연인지 그녀의 아버지는 방송 내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ㅎ) 힘든 내색 없이 밝은 마인드로 웃으며 그 일을 해내는 그녀를 보며 불효녀였던 나는 어쩔 수 없이 회한에 젖었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자주 못 뵙고 성격적인 쌀쌀함으로 다정하지 못했다..

삶, 그 풍경 202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