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 풍경 220

오늘은

드디어 지리한 (8개월째)약먹기가 끝나는 날.. 가뿐한 마음으로 병원에 가 늘 그렇듯이 채혈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실로 향했다. 차돌 같은 이미지의 젊은 의사는 역시나 무표정한 얼굴로 별일 없었냐 묻는다. 치료는 오늘로 종료되니 더 이상 처방전은 없다하며 집에 남은 약이 있으면 먹으라 한다. 그리고 10월 중 CT를 찍으라 한다. 유사결핵균의 치료가 남았으니 앞으로 영상으로 확인하며 봐야 한다는 말을 한다. 나로서는 유사건 뭐건 오늘로 끝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황당했다. 어렵게 기관지내시경까지 하면서 결핵으로 알고 약을 먹었는데 치료를 시작한 지 3개월쯤 됐을 때 갑자기 유사결핵균 얘기를 했었다. 결핵과 결핵사촌이 함께 있다나..ㅎ 인터넷을 검색하고 유사결핵균은 샤워기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있다해서 의..

삶, 그 풍경 2022.08.16

뒤풀이

제주 여행팀이 뒤풀이 모임을 가졌다. 기동력 좋은 선배님 집에 모여 차 한 대로 움직였다. 야외 깊숙이 자리한 한정식 집에서 점심을 먹고 역시 시골 정취 가득한 자연 속 작은 책방에 들렀다. 책도 팔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그곳 주인은 시인이었는데 지적이고 야무져 보이는 인상이었다. (집에 와 그녀의 시를 읽어보니 다시 가서 대화를 나누고픈 글들이었다) 책구경을 하고 원하는 책들을 고르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저수지 뷰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멋진 카페를 탐색 중이라는 선배 덕에 좋은 구경.^^ (요즘 카페는 갤러리 같은 외관에 기업형인 듯하다.) 마트와 아트센터만 아는 집순이인 나는 그 열정이 놀랍기만 했다.ㅋ 주부로서의 수다와 문인으로서의 수다가 혼재된 (아무튼) 좋은 만남.. 한 달에..

삶, 그 풍경 2022.07.10

오늘은..

병원 가는 날,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병원으로 향한다. 차를 쓰다가 안 쓰니 조금은 불편하지만 대중교통도 앉을 자리만 있으면 그닥 힘들지 않고 다닐 만하다. '꽃가라' 배낭을 멘, 전철 안 많은 노부인들, 조금은 비장하고 씩씩한 분위기의 그들은 아침부터 어디로 가는 걸까... 진료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채혈과 엑스레이를 찍고 30여 분 이상 차례를 기다린다. 웬 호흡기 환자들이 그리 많은지..갈 때마다 놀랍다. 그동안 채혈 후 붕대와 반창고로 붙여준 후 누르라고 하던 간호사.. 오늘은 떨어지지 않는 일회용 밴드로 고정시켜준다. (접착력이 안 좋아 잘 떨어지던 반창고..아마도 환자들의 건의가 있었던 듯하다.) 별일 없었냐는 의사의 의례적인 질문..탈수증세가 경미하게 있으니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한 뒤 ..

삶, 그 풍경 2022.06.29

고난의 봄

며칠 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자동차 검사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몸이 좋지 않았다. 몸살처럼 어딘지 불편한 느낌.. 비가 오면 삭신이 아프다는 뭇사람의 말을 실감하며 그날밤 잠을 설쳤다. 다음날도 상태가 안 좋아 누워 있는데 출근한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 양성 나와 집으로 오는 중이라고.. 헉 그거였나 싶어 근처 병원에 가 검사 받으니 약한 양성이라며 처방전을 준다. 유행에 민감하지도 않고 인간관계가 안 좋아서 코로나도 피해간다고 농담도 했었는데..ㅋ 아들과 오붓하게 격리 사흘 째다. 다행인 건 아들도 나도 큰 통증 없이 비교적 수월하게 지나고 있는 것이다. 2022 봄 왜 이러나.. 결핵균이 발견돼 5개월째 약을 먹었고 (이달 말 마지막 ct를 찍고 치료 종료될 예정이다) 2월부터 괴롭히..

삶, 그 풍경 2022.04.17

봄..

연약하고 화사한 봄꽃들 사이 묵묵히, 푸르게, 굳건히 서 있는 늘푸른 소나무..믿음직하다. 산책길이 온통 연둣빛이다. 애정하는 물가의 버드나무도 파릇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봄꽃 중에서는 산수유와 진달래를 좋아하는데(개나리 목련 철쭉 미안~ㅎㅎ) 때가 되면 무심하게 피어주는 꽃들이 눈물겹다.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데 외진 곳에 매화나무 두 그루가 꽃망울을 터트린 채 위엄있게 서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그 아래에서 서성였다. 찬 바람을 견디어내고 꽃을 피워낸 자태에서 소박한 기품이 엿보인다. 그 옛날의 어머니들을 연상시키는 꽃.. 제주에서 '일년살이'하는 후배가 뜻밖의 소포를 보내왔다. 수제 과일잼과 채소를 말린 차.. 글 잘 쓰고 손끝 야무진 그녀, 손글씨도 예쁘고..참 재능도 많다. 나는 ..

삶, 그 풍경 2022.03.31

큰 숙제

모 수필잡지사에서 글 의뢰가 와서 써보내고 글이 실린 3월호 책자를 받았는데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탈한 문장이 좋다며 음악에세이를 연재해줄 수 있냐고.. 한 편도 아니고 연재를..?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덥석 수락해야 하는데 섣불리 결정을 못하고 일주일 시간을 달라고 했다. 월간지라서 쉼없이 써야 하니.. 머릿속이 아득했다. 음악이야 모아놓은 곡 중 고르면 되지만 살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 이미 머릿속은 뒤숭숭하고 평화는 깨졌다. 일주일 내내 그럴 게 뻔해서 다음날 아침 쓰겠노라 톡을 보냈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 동안 글은 띄엄띄엄 쓰고 노느라 느슨해진 의식을 잡아준 것만도 고마운 일 아닌가. 음악을 헛들은 건 아닌가 보다. 부담을 덜기 위해 격월로 쓰기로 합의(?)를 봤다. 음악만 듣는 '날..

삶, 그 풍경 2022.03.15

나의 봄맞이

오른 팔이 아픈 지 한 달째다. 무거운 걸 들지도 않았고 팔을 혹사시킨 것도 아닌데 갑자기.. 하긴 모든 병은 예고하고 오는 게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아픈 거라고 어느 (똑똑한) 의사가 알려주긴 했지.. 한의원에 가니 '인대 염증'이라며 침 치료를 해주는데 열 번쯤 맞아도 차도가 없다. 흔히 말하는 '테니스 엘보'라는데 테니스를 치지 않는 주부들은 집안 일로 아프기 쉽고 내 경우는 오랜 세월 라디오 게시판에서 문자를 치느라 통증이 누적된 것일 수도.. 커피잔 들기도 힘이 드니 오른팔을 그만 쓰라는 계시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언젠간 낫겠지 하며 집에서 냉찜질로 버티는 중인데.. 나의 봄은 항상 이렇게 혹독하게 온 듯하다. 2월을 싫어하는 걸 몸이 알아채는 건가. 그 사이..음악과 함께하는 세계여행 강의를..

삶, 그 풍경 2022.03.02

어떤 이별

3년 전, 우연히 들른 라디오 음악방송 게시판.. 음악을 들으며 글도 쓰는 곳인데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생각하며 빠져들게 됐었다. '아름다운 당신에게' 진행자 강석우 님을 알게 돼 그 목소리에 중독됐었고 덕분에 크게 관심 갖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에 집중하게 됐다. 이후 콘서트홀에서 뵙게 돼 졸저 을 드리고 인사했는데 그 중 글 하나를 생방에서 읽어줘서 참으로 부끄럽고 고맙기도 했었다. 하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그 곳에서의 시간도 어떤 계기로 걸음을 끊게 되었고.. 간간이 소식만 듣던 중 며칠 전 꿈에서 그를 보고 방송에 가보니 이틀 째 녹방(녹음방송)이라며 모두들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방송이라는 멘트와 함께... 그때 꾼 꿈이 예지몽? ㅎ 어느새 6..

삶, 그 풍경 2022.01.27

부산행

부산에 다녀왔다. 주 목적은 조카 결혼식 참석이었지만 나의 (진짜) 목적은 바다도 보고 고속열차를 타보는 거였다. 평소 여행가자하면 싫다하던 아들녀석, 가족 결혼식이라 군소리 없이 동행하며 비싼 기차표도 예매해준다.ㅋ 동백섬에 들러 동백의 기개도 보고 오래전에 먹었던 짚불장어도 먹어보리라 야무진 꿈을 안고 달려갔으나.. 저녁 8시 다 되어 도착해 예약한 호텔에 전화하니 택시로 40분쯤 걸린다고, 식당 문 닫기 전에 저녁식사를 하고 오시란다. ㅎ 시간이 안 돼 장어는커녕 회 한 점도 못 먹고 썰렁한 역 근처 식당에서 국밥을 한 그릇씩 먹고 숙소에 도착, 밤바다를 보려는 애초 계획도 잊고 잠자리에 들었다. ㅠ 다음날 결혼식 참석 후, (문학박사라는 주례는 긴 시간 자기자랑과 군더더기 말만 늘어놓았고 신랑 신..

삶, 그 풍경 2022.01.17

'윈터링'

한 달만에 다시 병원을 찾아 혈액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를 면담했다. 더 좋아졌다는 말을 기대했는데 엉뚱한 얘기를 한다. 결핵이 아니고 유사결핵균인 것 같다고.. 일주일 뒤 다시 CT를 찍자 한다.ㅎ 힘들게 기관지내시경까지 하고 약을 한 달 넘게 먹었는데..어쩌라는 건지. 슬슬 신뢰가 옅어지고 마음이 불편하다. (검진 때 폐 사진에 하얗게 결절이 보여 의사샘이 종합병원으로 가라 해서 인생 끝난 듯 마음 졸였었다.) 유사결핵균 감염..검색해보니 마르고 감수성 풍부한 중년여인들이 잘 걸리는 병이라고 나와 있다.ㅍ 감성지수와 면역력과의 상관관계가 뭔지 어이없는 웃음만 나온다. 심각하거나 위험한 병은 아니지만 치료기간이 길다 하니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할 듯하다. 추위에 세탁기가 얼어붙었는지 가동을 안 해 ..

삶, 그 풍경 202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