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 풍경

요즘엔..

아데니움 2024. 1. 30. 12:34

얼치기 간병인 노릇을 한 지 3개월째다.
요즘 나의 생활 루틴은 가히 AI적이다.
환자의 끼니를 위해 하루 세 번 정확히 시간을 지켜 밥상을 차린다. 아니 죽상을..
8시, 12시, 저녁 6시..
하루 세 번 죽을 끓이면서 나의 자아는 죽을 쑤었다.
하지만 사람 하나 살리는 데 일조한다면 까짓 자아쯤이야..
그러는 동안 그림자처럼 라디오가(음악이)나의 동선을 쫓는다.
안방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안방으로..
늘 그랬듯 라디오가 나의 버팀목이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정리를 마치면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다.
고요한 밤의 적막을 즐기며 혼자 놀다가(티비도 보고 인스타도 보고 책도 보고..)
얼추 1시쯤 불을 끈다.

한 주에 한 번 마트에 가는데
유일한 외출이어선지 먹거리를 고르는 손길이 느긋하다. 하지만
카트  가득 채워도 왠지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활동이 없으니 갈 데도 없지만
다행인 건 '감금생활'이 그닥 답답하지 않다는 거다.
가끔 푸른 바다, 넘실거리는 파도가 그리울 뿐.
갈망이 없는 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새로운 건 공부 뿐인데..
스페인어 교재가 나를 노려본다.ㅠ

 너무도 과묵한 환자 때문에
속에서 천불이 날 때면 차를 몰고 나오지만 딱히 갈 데가 없다.
엊그제는 근처 대광사를 찾았는데
도심속에 있어선가. 참 분위기 없는 사찰이었다.
마치 영업장처럼 여기저기 불전함만 보인다.
반복적으로 틀어놓은 bgm 관세음보살 사이 풍경소리만 청아하다.
친구와 함께일 땐 '만사형통'이라 써진 부적을 낄낄거리며 사왔었는데..
(그녀도 치매엄마 모시느라 고생 중이다.)
경 내 카페에 들어가 멍때리며 새로운 느낌의 차를 마시고
신세계 중식당에 들러 (삼삼오오 즐거워보이는 사람들 틈에서)팔진탕면을 사먹고
다시 집으로 ..
그는  방사선 치료 후 휴식을 취하면서
지난 주 이런저런 검사를 마쳤다.
다음 주 진료 때 의사는 무슨 말을 할지..
내일의 걱정은 내일 한다는 스칼렛 오하라의 담대함을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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