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글(필사)

반추상 수필 /윤재천

아데니움 2022. 6. 21. 12:55

반추상수필은 그 의미가 다의적이다.

 수필은 형식이나 내용에 제한이 없는 글로 인식되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글이지만, 이런 인식이 수필의 어려움이기도 하고,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수필이 작가의 사실적인 모습이라는 선입견이 창작과정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수필의 이런 한계를 넘으려면 경계를 넘어 다양함을 토대로 발전하여 미래를 바라보는 수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능성을 막아놓고 무조건 '좋은 수필'의 출현만을 기대하고 있다. 이는 성장의 동력인 유전자 본체의 접속을 차단해 놓고, 수필의 깊이와 이해와 넓이가 불어나길 기대하는 일과 같다.

 수필은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며, 그 형식이나 문체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기존 수필의 특징인 감성과 구상적 소재에서 발아한 글은 한계에 봉착했다. 진실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서 작가는 지성과 감성, 새로운 시도를 동원해 활기를 충전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며 그 반향을 관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반추상 수필이 절실하다. 서양의 화단에서도 화가의 화필에만 의존해서 순간의 영상을 기록한 시기가 있었다. 카메라가 발명되고 대중화되면서 '그림의 시대'가 끝난 줄 알았지만, 이 자리를 추상화가 차지해 세를 넓히면서 오늘과 같은 그림의 부흥시대를 이륙했다.

 모든 것은 작가와 독자에 의해 그 의미와 가치가 만들어지고 쇠퇴하기도 한다. 문학은 다양한 사회 현상에 발맞추는 건 물론이며 앞서 내다 볼 의무가 있다.

 현대문학의 여명기에 이상의 난해한 시와 소설, 그 외 작품들이 선을 보였을 때, '잠꼬대 같은 소리'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했으나,그의 문학의 진가가 훼손되지 않고 많은 연구자의 노력을 통해 값진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때 새로운 관점으로 쓴 수필은 지금 읽어도 재미가 있다.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줄 산물이 되기 위해서는 몇 걸음 앞선 시도가 필요하다.

 지금은 반추상수필을 향해 도전하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시점이다. 반추상이란, 반구상과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새로운 길, 걷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길을 함께 걷는 것으로 미술계에서 말하는 추상화와 구상화의 중간 성격 그림과 같은 글이다.

 독자의 기대가 오늘의 수필의 성을 이루어 놓은 만큼, 우리의 기대가 다시 현실을 뛰어넘을 때, 수필은 미래를 창조하는 보고가 된다.

 이것이 예술적 작품을 낳기 위한 수필의 본령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또 하나의 길이다. /(2022 현대수필 여름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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