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글(필사)

반칠환 시/한평생

아데니움 2022. 2. 21. 14:03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 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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