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베른의 어느 학교에서 고전학을 가르치는 고전문헌학자 그레고리우스는
출근길에 다리에서 투신하려는 (포르투게스) 젊은 여자를 구하고 그녀를 학교로 데려온다.
교실에 앉아 있던 여자는 조용히 나가고 그녀의 코트를 가지고 달려나간 그는
코트 안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한다.
서점에 들어가 책의 주인을 확인하고 기차역으로 달려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리스본행 열차에 탑승한다.
책 제목은 <언어의 연금술사>이고 저자는 리스본의 의사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이다.
열차에서 책을 읽으며 그에게 빠져든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 도착하여
책 속의 인물들과 그의 행적을 좇으며 생전의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데...
프라두의 글은 그레고리우스가 평소 애독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버금 갈
주옥 같은 글들로 가득 차 있다.
어려서부터 품위있고 우아하며 똑똑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삶을 살던 귀족 출신 프라두는 철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판사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된다.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받던 삶에서 당시 살라자르
'리스본 도살자' (비밀경찰의 수장)의 목숨을 구한 뒤
자책감으로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절친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기억력이 좋은 그녀의 머릿속에는 동료들의 정보가 저장돼 있는데
위험에 처한 그녀를 도피시키고 돌아온 그는 혁명의 날에 지병인 동맥류로 사망한다.
프라두는 그의 가족과 친구, 동료에게 글을 남겼는데
그의 여동생이 책으로 엮었다.
그들을 만나 프라두를 회고하던 그레고리우스는
현기증 치료를 위해 베른으로 돌아와
리스본에서 만난 인물들을 사진으로 남긴다.
이 책은 액자형 소설이다.
소설 속에 또 하나의 소설이 존재하는..
주인공은 그레고리우스이지만 프라두이기도 하다.
600쪽의 책을 읽고 영화보기로 '확인사살'을 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지적인 그레고리우스와 잘 어울렸다.
책에선 다리에서 처음 만난 여자의 존재가 나오지 않았지만
영화에서는 그녀가 '리스본 도살자'의 손녀라 소개된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로 다시 보는 건 권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의 로망인 리스본의 풍광(주로 카페였지만)은 볼 만했다.
내가 흠모하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조국..
언제쯤 리스본에 가보려나..
책에서처럼 어느날 일상을 홀연히 버리고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무엇보다 자기 인식, 깨달음이 절대적이죠.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해주는 인식작용 말입니다.
자기 앞에 놓인 생을 그대로 살아갈 것인지, 그게 정말 원하는 것인지 자문하는 거예요.
오직 인간만이 자기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고
진실한 자아를 탐구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잃어버린 나와 만나는 마지막 순간이다.'
밑줄 친 부분 (프라두의 책 내용)몇 개를 적어보자면
상상력과 친근함은 우리의 마지막 성소다.
허무한 건 욕망이고 만족이며 누군가에게서 보호받는 느낌도 언젠간 부서진다.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이다.
프라두가 좋아했다던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찾아 들어본다.
'그 책에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의 주름들 (0) | 2021.07.20 |
---|---|
류시화 <마음 챙김의 시> 중에서.. (0) | 2021.02.21 |
장기하 책 '상관 없는 거 아닌가' (0) | 2020.11.29 |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0) | 2020.06.27 |
허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0) | 2019.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