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아데니움 2018. 6. 19. 10:50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김 소현

                                               

 

 

오전 11시 정각이면 라디오 음악 FM에서 영화음악 시그널이 흐른다.

애잔하고 시정 어린 그 하모니카 음률은 불세출의 영화음악 <일 포스티노> 테마곡이다. 그 곡을 시작으로 다양한 영화음악이 해설과 함께 한 시간 동안 흐른다.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초록빛 메타포를 안겨주던 이슬라 네그라의 바다로 가고 싶어진다.

 

이슬라 네그라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12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해안마을이다. 가난한 어부의 열아홉 살 아들 마리오 히메데스는 일을 찾으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구인광고가 붙은 우체국으로 간다. 유일한 직원이자 우체국장은 마리오에게 자전거가 있는지 물어보고 우편배달부로 채용한다. 그는 편지의 수신인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라고 말한다. 사회주의자로 정부에서 추방돼 바다를 벗 삼아 창작할 곳을 찾던 네루다가 마을 외딴 집에 정착하면서 그에게 하루에도 많은 양의 편지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순박한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네루다의 편지를 배달하게 되면서 그의 시를 읽게 되고 시인과 우정을 쌓는다. 시인은 그에게 메타포의 뜻을 가르쳐주려고 비를 ‘하늘이 우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마리오는 동네주점의 매력적인 소녀 베아트리스에게 구애하기 위해 시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가 거절하자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 말하며 종용한다.

모친의 온갖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리오의 ‘메타포’에 홀린 소녀는 그에게 빠지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한다. 서민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비틀즈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그렇게 주민들과 지내던 네루다는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고 프랑스 파리대사로 임명돼 동네를 떠난다. 결혼 후 장모의 식당에서 일하게 된 마리오는 당근 껍질을 벗기고 양파에 눈물을 흘리면서 시인을 보러가기 위한 돈을 모은다.

어느 날, 마리오는 이슬라 네그라가 그립다는 네루다의 편지와 녹음기를 받는다. 마리오는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시를 써서 보내고 녹음기에 종소리, 파도소리, 갈매기소리, 벌들의 윙윙거림, 막 태어난 아들의 울음소리를 녹음하여 보낸다. 그는 시인과 자신의 이름을 넣어 아들 이름을 짓는다. 마리오는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수상에 감사인사를 하는 네루다의 모습을 TV에서 보며 마을사람들과 축하잔치를 벌인다.

얼마 후 쿠데타가 발발하고 네루다는 병이 들어 소리 없이 외딴집으로 돌아온다. 군인들은 네루다의 집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감시한다. 마리오는 몰래 시인의 집으로 들어가 여러 나라에서 온 전보내용을 알려준다. 시인은 마리오에게 자신의 병세를 ‘상처는 우물처럼 깊지 않고 교회 문처럼 넓지 않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의 부축을 받아 창가로 가 검은 바다를 응시한다. 그는 병원으로 실려 가지만 곧 사망한다. 네루다의 죽음 후 마리오도 경찰에 연행돼 실종된다.

 

 이 소설의 원작자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신문사 문화담당 기자로, 소설을 쓰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안 돼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편집장은 그에게 이슬라 네그라에 가서 네루다의 사생활을 취재해오라고 한다.

그는 낮에는 네루다 기사를 쓰고 밤에는 바다의 속삭임을 들으며 소설 구상을 한다. 그를 만난 네루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은 현 아내 마틸다 뿐이라며 가십거리가 없음을 알려준다. 그는 시인의 집을 기웃거리며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알게 된다. 소설이 나오기까지 14년 동안 마리오의 아내 베아트리스 곤살레스가 종종 그를 찾아와 남편의 이야기를 써주기를 원했다 한다.

나는 깔끔하면서도 길게 여운이 남는 이 소설에 반했다. 진한 감동과 재치, 해학 넘치는 성 묘사, 순수함이 빚어낸 이야기들로 읽는 내내 유쾌한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연극과 드라마,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그는 탱고와 팝송, 자전거를 좋아하고 셰익스피어를 낭송하며 살았다 한다.

소설을 영화화 한 <일 포스티노>의 테마곡을 만든 사람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음악가 루이스 바칼로프다. 엔니오 모리코네와 쌍벽을 이루는 영화음악 작곡가인 그는 이 곡으로 1996년 아카데미 드라마음악상을 수상했다. 하모니카가 원곡이지만 영화에서는 네루다가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는 걸 볼 수 있다.

<일 포스티노>는 들을 때마다 현실을 잊게 하고 감성을 일깨워 초록빛 바다로 달려가고 싶게 만든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그 음악을 듣기 위해 나는 매일 오전 11시에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수필미학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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