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에는..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중에서

아데니움 2015. 2. 3. 13:08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혹은 결이다.'

마음속에서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비밀스런 내면의 충동을 억제하지 마라..'

 

경지 정리가 매끄럽게 잘된 땅에서 누구나 심으려고 하는 작물을 심고 남들보다 더 잘되기만을 바라는 경쟁적인 요행심으로 갖는 것보다 차라리 측량도 안 된 황량한 들판에 서서 땅과 자신의 관계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시 고민하는 우직한 자.

자와 컴퍼스로 그려진 정치한 설계도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집 지을 땅 위에 서서 바람의 소리를 따르고 태양의 길을 살펴 점 몇 개와 말뚝 몇 개로 설계를 마무리할 수 있는 자.

외국 철학자들 이름을 막힘없이 들먹이면서 그 사람들 말을 토씨 하나까지 줄줄 외우는 것보다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애써 자기 말을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자.

이념으로 현실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현실에서 이념을 새로 산출해 보려는 자.

믿고 있던 것들이 흔들릴 때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자.

이론에 의존해 문제를 풀려하지 않고 문제 자체에 직접 침투해 들어가는 자.

봄이 왔다고 말하는 대신에 새싹이 움을 틔우는 순간을 직접 경험하려고 아침 문을 여는 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자.

들은 말을 여기저기 옮기지 않을 수 있는 자.

옳다고 하더라도 바로 행동하지 않고 조금 더 기다려 볼 수 있는 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체계를 뚫고 머리를 내밀어 볼 수 있는 자.

호들갑스럽지 않고 의연한 자.

기다리면서도 조급해 하지 않을 수 있는 자.

'해야 할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데 더 집중하는 자.

십여 시간이 넘는 비행 여정에서도 내릴 때까지 시계를 한 번도 안 볼 수 있는 자.

아는 것에 제한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근거로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 하는 자.

이성으로 욕망을 관리하지 않고 오히려 이성을 욕망의 지배 아래 둘 수 있는 자.

'나'를 '우리'속에서 용해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는 자.

모호함을 명료함으로 바꾸기보다는 모호함 자체를 품어버리는 자.

자기 생각을 논증하기보다는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자.

남이 정해놓은 모든 것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자.

편안한 어느 한 편을 선택하기보다 경계에 서서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자...

 

 

이런 자들이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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