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에는..

장석주 / 내가 사랑한 지중해

아데니움 2014. 7. 14. 10:56

 

 

우리는 우로보로스처럼 운명이라는 몸통을

꼬리에서부터 조금씩 베어 먹으며 살아간다.

 

메르하바 터키!

 

내 삶을 살찌게 해준 자양분은 여행과 꿈이었지.

오늘 터키로 떠나는 자는 행복할지니

그곳은 영원한 신들의 정원.

그곳은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안식처.

그곳은 여행자들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터키다. 에게 해가 낳고 기른 땅,

태양은 눈부시고

땅은 오래 되었구나.

하늘 아래 집들은 평화롭고

무화과 나무와 포도나무의 열매들은 단맛이 들고

시간은 느릿느릿 흐르는 구나.

 

어느 바람이 나를 데려왔을까.

아시아의 끝, 유럽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나는 만났노라.

하루에 다섯 번이나 신께 예배를 드리고

차이와 고등어 케밥을 즐기는 이들을.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 성당과 그랜드 바자르와 톱카프 궁전을

보스포루스 해협과

저 영원회귀의 바다, 쪽빛으로 빛나는 에게 해와

저 너머 차고 검은 바다 북해를.

금빛으로 쏟아지는 태양빛 아래에서 열매를 익히는

올리브 나무들과 무화과 나무들.

 

여행자여, 이스탄불에서는 쫓기듯 걷지 마라.

발길은 늦추고 여정은 멈추어라.

부디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기쁨을 만끽하라.

옛 도시의 신비로운 기품과 이슬람의 노래들에 귀를 기울여라.

이것들이 베푸는 행복을 뼛속까지 음미하고 누려라.

 

오늘의 젊은 연인들은 부부가 되고

요람에 잠든 아기들은 자라나 청년과 처녀들이 되겠지.

시간은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기에

언젠가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야사스, 그리스!

 

인생을 깡그리 써버리고

탕진한 자들이여, 지중해로 오라.

 

고대의 문명 세 개를 살찌우고

세계의 3대 종교를 낳고 기른 곳.

 

미코노스, 크레타, 산토리니, 사모스...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들.

........

지중해는 1천년 동안 그리스의 바다였다.

오, 지중해가 품어 키운 나라 그리스여.

상고시대에서 황금시대를 거쳐 헬레니즘 시대로 이어지는

서양 문명의 서막을 연 원조 나라.

 

그리스로 와서 보라.

제우스와 아테나 여신이 살았던

문명의 찬란한 순간들을.

 

문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햇빛 속에서 빛나는 폐허다.

겹겹이 쌓인 돌무더기다.

이 폐허 속에서 신들이 부활한다.

 

별을 머리에 이고 행복을 찾는 일만이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단 하나의 미덕.

진정 행복해지고 싶다면

모든 망설임을 떨어뜨리고 그리스로 오라.

 

세월과 사랑은 빠르게 지나간다.

지나간 것들은 그리워지는 법.

시간은 단 한 번으로 끝날 것이기에.

지난간 것들은 우리 기억 깊은 곳에서

아득한 추억으로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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