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때 거기 사랑이

아데니움 2009. 8. 15. 23:07

 

 

 

   한 때 거기 사랑이



                                                        김소현



  TV 아침방송에 왕년의 인기가수 이용복이 나왔다. 세월이 비껴가는지 그의 외모는 그닥 변한 게 없어 보였고 노래 실력도 여전했다. 검은 안경을 끼고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그를 보니, 역시 짙은 검은 안경에 신기에 가까운 기타실력을 선보이며 케 사라를 열창하던 푸에르토리코 출신 맹인가수 호세 펠리치아노가 떠오른다. 음색과 창법이 비슷해서인지 이용복은 그의 노래들을 우리말로 번안해 불러 인기를 끌었었다. 정겨운 옛 노래를 들으니 그의 노래가 흐르던 그 시절 음악 감상실의 추억이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1970년대에는 유난히 음악다방이 많았고 통기타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쯤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세븐틴’이라는 라디오 음악방송을 들으며 새로운 세계가 있는 걸 알았고, 그 음악들을 들으며 몸 안의 세포가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 밤 심야방송에서 듣는 다양한 음악들은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키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때라 중 3때는 공부 좀 한답시고 방과 후 독서실에 들어갔는데, 공부는 뒷전이고 휴식시간마다 틀어주는 팝송이 좋아서 부모님의 학비를 축내며 그곳에 눌러앉아있었다. 음악만 듣고 있어도 아까울 시간에 수학공식을 외워야 하는 현실에 분개하며 홀로 쓸쓸해했다.

  세상은 음악 풍년이었다. 눈이 내리면 레코드점마다 밖에 내놓은 스피커에서 아다모의?눈이 내리네’가, 비가 오면 빗줄기의 리듬을 들어보라고?Rhythm of the Rain?이 울려 퍼지곤 했다. 그 시절 전주 경원동에는 지금은 철거되어 없어진 네온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광고탑이 있었다. 소박한 도시민들은 일정한 리듬으로 명멸하던 그 크고 화려한 도시의 상징물 아래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번화가였던 그 주변엔 오래된 음악다방이 있었는데 전주에서 음악 꽤나 듣는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내가 미성년일 때는 언니가 다니며 음악을 들었고 졸업 후엔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곳에는 시간대별로 디스크자키가 있었는데 내가 가는 시간에는 회사원 같은 이미지의 디제이가 있었다. 그는 그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짧고 단정한 머리에 늘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앉아 신청곡을 틀어주곤 했다. 음악부스에서 창백한 낯빛으로 내 쪽을 응시하곤 했는데 나를 바라본 건지 내 친구를 바라본 건지는 확실치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늘 우울한 표정을 짓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앉아있는 모습만 보던 터라 그가 목발에 의지한다는 것을 몰랐는데 그 사실은 소설적인 연민을 더해주었을 뿐 내게 어떤 의미도 없었다. 어쨌건 그의 우묵하게 음영이 짙은 시선을 은근히 즐기며 우리는 그곳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갈 때마다 다양한 음악을 청해 들었다. 그때 나는 세상의 고민을 다 짊어진 기분으로 모든 노래의 가사가 나의 사연인 양 폼을 잡으며 음악에 의존했고, 그런 나를 이해해 줄 누군가를 막연하게 그리워했다.

  낮엔 모처에서 레코드 가게를 하고 있다는 그 디제이의 요청으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내가 원하던 일이었기에 흔쾌히 대답하고 그 작은 가게에서 투명한 유리너머로 거리의 풍경을 내다보면서 마음껏 음악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말인가를 할 듯 하며 나를 바라보던 그가 옆 건물의 레스토랑에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와 마주 앉아 무심코 탁자 밑으로 시선을 내린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까이에서 본 그의 한 쪽 다리는 헐렁한 바지 안에서 존재조차 없는 듯 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는 순간, 나는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무슨 핑계인가를 대며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가 느꼈을 자괴감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없지 않지만 그때 나는 어렸었다. 나는 단지 음악이 좋았고 그 분위기가 좋았을 뿐이었다. 그에 대한 생각은 연민 정도였고 좋은 음악친구 이상의 감정이 없었는데 그는 내게 프러포즈 하려던 것 같았다. 그 후 그와는 소식이 끊겼고 얼마 후 거리에서 한 여자와 어딘가로 걸어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았는데, 약간 간격을 두고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은 기묘해 보였다. 나는 누가 됐건 음악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지순한 여인을 만나 그가 행복하기를 멀리서 빌어주었던 것 같다.

  

   once there was a love

   but that was long ago

   한 때 거기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호세 펠리치아노의 once There Was a Love는 고독을 씹으며 우울해 하던 그때의 감성과 정서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 있는 노래였다. 옛 사랑을 추억하는 애틋한 가사에 잔잔하고 적절하게 노래를 뒤따르는 트럼펫 반주가 인상적인 곡이다.

'한 때 거기 사랑이'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들과 분위기 좋던 음악 감상실, 레코드 가게가 즐비하던 낭만으로 차있던 거리와 눈 내리던 골목골목에….

 

 

 

그동안 음악과 관련된, 음악이 섞인 글들을 몇 편 썼지만

어떤 음악을 듣고 그 주관적인 느낌을 글로 묘사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언어의 유희일뿐,

직접 그 음악을 듣기 전엔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음악은 그저 듣는 게 상책이라는 게(자신의 감각으로)

내 생각이다.

음악에세이만큼은 묘사보다는

그 곡에 대한 추억이나 사연을 쓰려고 생각한다.

한때 거기 사랑이 - 이 글에서 내가 음악을 많이 듣고 아는 것처럼 표현했으나

수박 겉핥기 정도이고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을 조금 들었다는 말이다.

세상엔 아직도 많은 미지의 음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련한 추억의 노래...Once There Was a love

 

 

    Light My Fire: The Very Best Of Jose Felic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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