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내려놓기
김소현
몇 개월 전 남편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수술을 앞두고 생각지 않은 난관에 부닥쳤다. 기독교 신자인 시누이들이 수술을 받지 않고 기도로 병을 낫게 하자는 말을 꺼낸 것이다. 평소 신실한 신앙심을 잘 알고 있었지만 병명이 확실한 병을 기도로 낫게 하자는 그녀들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고, 그 일은 남편의 발병만큼이나 나를 놀라고 곤혹스럽게 했다.
기도로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말에 종교에 관심 없던 시어머니까지 합세해 밀어붙이려는 기세에 나는 심장병이 생길 것처럼 답답하고 괴로웠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중의 시련을 외롭게 견뎌내며, 한 생명을 두고 자신들이 믿는 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려는 그 맹목적인 이기심이 질리고 두려웠다. 병을 핑계 삼아 이 기회에 확실하게 전도하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거부감이 생겼다. 남편도 수술 후유증이 두려운지 결심을 못하는 눈치였는데 고립무원의 가운데에 있던 나는, 내 남편이고 내 가정의 가장이니 우리 가족이 결정하겠다는 말로 그들을 이기고(?) 겨우 남편을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다. 너무 열성적인 종교는 인간의 삶을 압박한다고 말한 유명 시인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치료도 끝나고 남편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 요즘도 시누이들은 가끔씩 들러 남편의 몸에 귀신이 붙었다며 기도를 한다. 처음엔 조용하고 진지하게 시작하여 비종교인인 나조차 눈물이 흐를 정도로 절실하던 기도가, 시간이 흐르며 신심이 충만해지면 마치 무당 굿 하듯 요란해진다.'이적'을 보여 달라며 거의 절규에 가까운 기도를 하는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영화 속 ‘모세의 지팡이’가 없어서인지 그 모습은 쓸쓸하기만 했다. 그녀들은 안부를 묻는 전화통화 중에도 하나님이 살려줄 거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서 퉁명스레 전화를 끊곤 했다. 그녀들에겐 미안하지만 내 마음은'의사가 수술을 잘 해 살렸고 아내인 내가 죽을 잘 먹여서 살았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특정 종교를 비난할 생각은 없으나 비종교인인 내겐 시누이들의 그런 행동이 분별력 없게 느껴졌고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저 수술과 치료가 잘 되게 해달라고 조용히 기도하는 게 진정한 종교인의 태도라 생각하고 그녀들을 원망했었다.
불교 수행승 아잔 브라흐마는, 마음속에서 술 취한 코끼리가 비틀거릴 때 깨어있음의 밧줄로 코끼리를 붙들어 매야 한다고 말한다. 깨어있는 마음을 키우지 못하면 코끼리는 통제하는 이도 없이 집착과 분노, 욕망과 쾌락 사이를 뛰어다닐 것이라고 한다. 마음속 코끼리를 따르지 말고 그 코끼리의 주인이 되라고 말하는데….
이 얼마나 어려운 수행의 경지인가.
다스려지지 않은 인간의 마음은'술 취한 코끼리’와 다름없다. 남편의 발병 이후 내 마음속엔 코끼리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그릇 같았고, 시댁 식구를 대할 때는 전장의 병사처럼 전의로 가득 찼다. 그러나 시누이들의 유별난 기도도 결국 남편을 살리고자 함인 것을 잘 알기에, 체질적인 거부감으로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퍅하게 행동한 내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다.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잘 쌓은 벽돌 998개는 보지 않고 약간 비뚤어진 두 장의 벽돌만을 보면서 괴로워 한다….하나님도, 붓다도, 부모도 아닌 바로 자신의 마음이 쓴 대본에 의해 울고 웃는 게 인간이다. /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중.
사람들 개개인 성격이 다르고 장점 단점이 다르지만 상대방의 수많은 장점을 생각 못하고 한 두 개의 단점을 보며 괴로워하는 게 보통 인간의 마음이다. 마음 내려놓기란 다름 아닌 뭔가에 대한 집착에서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다. 원망과 미움도 집착에서 오는 고통이다. 인간의 삶에는 어려운 일도 많고 참기 힘들 정도의 분노로 치가 떨릴 때도 있다. 화를 낸다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내면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놈의 코끼리는 시시때때로 날뛰며 나를 괴롭히는 것을…. 깨우친 사람들의 지혜를 따라가는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살다보니 마음 내려놓을 일도 점점 줄고 몸은 그만큼 한가해진다. 그러나 그 한가함이 외로움으로 번지진 않으니 코끼리도 나이를 먹는가보다.
(2009 현대수필 봄호)
이 글은 특정 종교를 비난하는 글이 아니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문이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라는 책 내용이 좋아서
필요이상으로 인용을 길게 한 것이 걸린다.
매수를 늘리려고 한 건 아닌데,
글이란 엮어져 나오면 늘 후회가 남는다.
고치고 고쳐도 또 고치게 되는 글쓰기의 어려움?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