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
최초로 해외유학을 하고 최초로 유럽을 여행한 여자 나혜석은
1896년 수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가 딸들에겐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 아명으로 불리다가
여고에 들어가면서 '명순'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녀는 진명여자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오빠들의 권유로 일본으로 떠나
일본여자미술대학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근대적 여성의식에 눈뜬 그녀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오빠 친구인 최승구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집안에서 정해준 정혼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약혼발표를 하지만 최승구는 폐결핵에 걸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어 그녀도 귀국 후, 최승구 형의 편지를 받고 그의 집에 가는데
그는 그녀에게 '오해없이 영원히 잊어주오'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그의 나이 24세..)
신경쇠약에 걸린 그녀에게 어느날 변호사 김우영이 청혼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걸고 그와 결혼한다.
영원히 사랑할 것
그림을 그리게 해줄 것
시댁식구들과 따로 살게 해줄 것
최승구의 비석을 세워줄 것...
결혼 후 그녀는 그림작업에 몰두하고 전시회도 열며 3남1녀의 자녀도 낳는다.
어느 해, 남편을 따라 파리로 간 그녀는 홀로 그곳에 남아 미술공부를 하며
최린을 만나 스캔들을 일으킨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그녀는 한국에 와서도 그에게 연락하고
이를 알게된 김우영이 (그녀를 용서 못하고) 두 사람은 이혼한다.
맨몸으로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온 그녀는
1934년 이혼고백서를 발표하고 최린에게 위자료청구 소송을 건다.
이후, 금강산으로 가 화실을 열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던 중 불이 나
작품들이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한다.
최린이 소송취하의 조건으로 얼마간의 돈을 보내주어 재기하는가 싶었는데..
건강이 안 좋아진 그녀는 일엽스님이 있던 수덕사에 가 5년을 지낸 후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후 양로원을 전전하다 1948년, 52세에 행려병자로 사망한다.
* 남의 애정사에 관여할 마음은 없지만
잠시나마 사랑한 상대(최린)에게 위자료를 요구하다니..
누가 누구에게, 어떤 명분으로? 그야말로 쌍방과실 아닌가.
돈이 개입되면 치정이 되고 마는 사랑놀음..
어쨌건 그 당당함만은 대단하다 싶다.
여자로서는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었지만 근대예술에 큰 영향을 미친 그녀..
지금 그녀의 그림이 300여 점 남아 있다 하니
무의미한 인생만은 아니었다 생각한다.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여자 나혜석의 일생을 돌아보며 연민에 젖어 있던 차에
안나 카레니나 영화를 보게 됐다.
불륜의 끝..왜 여자들만 불행한가..
영화 내내 흐르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1악장)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톨스토이와 차이콥스키의 절묘한 만남..
'미(美)를 좇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예술학 강의 (0) | 2021.10.26 |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0) | 2021.09.07 |
클레오파트라 7세 (0) | 2021.08.06 |
봉선사 연꽃 (0) | 2021.07.26 |
힌국 근현대 미술명작전 (0) | 2021.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