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종교없이 산다

아데니움 2013. 5. 18. 12:50

 

 

 

종교 없이 산다

 

김소현

 

 

아들과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사촌 집에 갔다가 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14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시간이라서 다닥다닥 붙은 좌석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 내심 궁금하고 신경이 쓰였다. 가운데 자리이던 내 왼쪽에는 캐주얼한 차림에 모자를 쓴 약간 지적인 느낌의 남자가, 오른쪽엔 말끔히 차려 입었으나 어딘지 호감이 가지 않는 남자가 앉았다. 일행인 듯한 그들의 호칭은 목사님이었다. 맙소사! 긴 시간 시달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하며 방어용으로 책을 꺼내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에 앉은 분이 슬슬 말을 걸어왔다.

약간 쉰 듯한 전형적인 목사님 말투로 그는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러곤 토론토에 거주하는 한인 목사 사십여 명이 캄보디아로 선교활동을 하러 가는 길이라 했다. 그렇다면 전후좌우에 거의 목사님들이 앉은 셈이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나는 장난스런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제 특기는 전도되지 않는 거예요”

그 목사님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왼쪽의 목사님은 침묵을 지키며 추이를 지켜보는 듯했다. 승무원이 음료를 가지고 오자 나는 와인을 주문했고 그들은 주스를 시켰다. 약간의 대화가 오고간 끝에 공부하는 아이를 두고 가는 길이라 하니 자기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며 아들 전화번호를 물었다. 전도는 되기 싫으면서도 아들에게 도움이 될지 몰라 번호를 알려줬다. 그는 처음 본 나와 얼굴도 모르는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해 주었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그들은 몇 시간 후 다시 캄보디아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왼쪽의 목사님은 그제야 좋은 얘기 많이 했냐고 말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정작 고수는 따로 있었다. 나는 예를 갖춰 그들의 행보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할 텐데 또 다시 긴 비행을 하며 가는 그들의 열정에 대해….

나는 종교가 없다. 중학교 땐가. 헤르만 헤세에 빠져 그의 글을 섭렵할 때 그가 종교를 갖지 않는 이유에 대해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종교관은 곧 나의 종교관이 되었고 그때 확립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저 종교 없이도 나쁜 생각 안 하고 나 자신을 믿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특정종교를 택해 편견을 가지는 게 싫었고 신을 적당히 사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지한 생각인진 모르지만 이런저런 죄를 짓고 주말에 면죄부 받으러 교회에 가는 것은 모순이라 느껴졌고 그것은 스스로에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고결한 영혼과 종교는 무관하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성과 속은 섞이는 게 아니라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을 때는 태교를 한답시고 당시에 살던 관사 앞 작은 성당에 나간 적도 있었으나, 자아가 강한 탓인지 믿음은 생기지 않았다.

때로 성당에 가면 경건한 분위기와 성가대 합창,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좋았고, 산사에 가면 조용하고 사색적인 느낌에 마음이 편안해져 좋았다. 법구경을 읽고 한때 불교에 관심을 가진 적도 있으나 금싸라기 같은 경전의 내용에만 심취했을 뿐 절에 다니기는 싫었다. 종교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사람은 병에 걸리면 대부분 종교를 찾는다는 것이다.

몇 해 전 남편이 암에 걸렸을 때 시누이들을 따라 교회에 간 것은 아내로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데, 혹여 결과가 안 좋을 때 원망이라도 듣게 될까봐 따라갔던 게 사실이다. 뭔가 필요할 때만 신을 찾는 대열에 서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한 상황에 쓴웃음을 짓기엔 현실이 절박했다. 약한 존재가 인간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종교가 있다. 나도 인간이기에 때로 고독이 외로움으로 변질되고 굳건하던 자존심이 힘을 잃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신께 구원을 요청하고 싶을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훌륭한 신부님과 목사님, 스님이 많고 그들 모두를 존경하기에 한 가지 종교를 택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젠 종교를 갖지는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문밖에서 추위에 떨며 ‘좋은 말씀’을 전하러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성을 잠시 잠재우고 그를 들여 따뜻한 차라도 대접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오직 인간적인 이유로 그 간절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세월이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세상엔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임종을 눈앞에 둘 때 신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사후세계에까지 욕심을 내고 싶지 않다. 알랭드 보통의 책『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는 이런 말이 써 있다. ‘종교는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이고, 지적이기 때문에 신앙인들만의 전유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이다.’ 라고.

나는 종교 없이 살지만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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