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과 관능의 자비
김 소현
인터넷 도보여행카페에 가입한 지 일 년이 되었다. 건강도 다지고 낯설고 먼 길을 걷는 희열을 맛보고자 가입한 카페다. 도보 코스는 주최자의 취향에 따라 산길 평지 도심 한복판 등 다양하였는데 나의 체력으로는 걷기의 고수들이 다니는 길은 그림의 떡일 뿐 후미를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체력과 감성에 맞는 도보코스를 찾게 되었고, 십 킬로미터 정도의 평지와 볼거리가 있는 문화도보를 선호하게 되었다.
어느 날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회원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인 고려불화佛畵대전 관람 도보를 주최하였다. 관심이 가던 전시회였고 밋밋하게 걷는 것 보다 보람이 있을 것 같아 참가하였다.
전시회장은'700년 만의 해후'라는 부제에 걸맞게 불교신자로 보이는 여인네들과 승려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현실의 밖으로 나온 느낌이 들었다. 어둑한 실내의 그림들은 벽에 걸려있다기보다 공간에 앉아있거나 서 있는 느낌이었다. 빨강 초록 검정을 주조로 한 색채에 금니 ― 금가루와 콜라겐을 섞은 광안료 ― 로 장식한 그림들은 고구려 벽화 이후 회화로 남은 유일한 유물이라고 하는데 예술품으로서의 진가를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중국 일본의 불화가 부드럽고 온화한 색깔이라면 한국의 불화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이었다.
내 눈길을 끈 작품은'수월(물방울)관음도'였다. 법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선재동자를 관음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 그림이다. 비단 화폭의 커다란 물방울 속에 여인의 형상으로 서 있는 관음보살의 고고한 자태는 왕후와도 같은 기품과 관능을 내뿜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의상과 머리부터 발까지 길게 늘어뜨린 화려한 베일, 길고 뾰족한 손톱과 붉은 입술은 이집트나 인도의 무희를 연상시켰고, 우아한 손가락 끝에는 버드나무가지와 정병― 맑은 물을 담는 병― 이 들려있었다.
5세기경 중국 문헌에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버드나무가지를 자비의 형태로 본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다분히 관능적이고 여성스럽다. 버드나무 껍질에는 아스피린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세상을 정화시키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미로 이 나뭇가지를 물에 적셔 뿌리는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관음을 에워싸고 있는 물방울은 어떤 의미일까. 에워싼 게 아니라 관음 스스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긴 타원형의 형상은 연꽃잎 같기도 하고 촛불의 불꽃 같기도 하였다. 그 형상을 관음과 연관지어볼 때 어리석은 중생으로 인해 흘리는 고통의 눈물방울인지, 제 몸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의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불꽃이 타들어갈수록 자신의 몸은 점점 녹아 없어지는 희생의 의미가 있는 촛불은 특별한 사유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때 소리 없는 열정으로 타오른다.
낮은 조도에서 묘한 광휘를 내뿜는 그림들은 종교를 떠나 예술로써 신비하고 오묘한 아름다움을 풍겼고 춤을 추는 듯한 곡선의 매력에 빠져 나는 한동안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신도들은 이어폰으로 경을 들으며 손을 합장하고 절을 하였다.
불교에서 관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덜어주는 존재인데, 그 자비가 관능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말함일 거라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고개를 약간 숙인 관음의 얼굴은 자애로운 모성의 이미지를 풍겼다. 그것은 근엄하고 성스러운 자비가 아니라 조용하고 은은한 여성스러운 자비였다. 반쯤 감은 두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게 아니고 집중한 상태라고 하는데 그 집중이란 곧 수행을 말함일 게다.
불화의 분위기는 은은하고 화려하면서 깊었다.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말이 있다. 최대한 정성을 들여 관음을 아름답게 표현하려 노력했을'혜허'라는 승려화가의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전시회장 입구에 써 있는 문구가 걸음을 붙들며 나를 사색에 빠지게 하였다.
'아름다움은 시공을 초월하고 염원은 생사를 뛰어 넘는다'
생사를 뛰어넘을 정도의 간절한 그 무엇이 바로 종교가 아닐까 생각하니, 종교가 없는 내 마음도 숙연해졌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기획자가 직접 일본의'센소지'라는 사찰에 가서 삼배를 하고 작품들을 빌려왔다고 한다. 사찰의 주지스님이 그림들도 가끔 조국이 그리울 거라는 말과 함께 흔쾌히 빌려주었다고 하는데, 우리의 문화유산을 남에게서 빌려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애석하였다. 돈을 받고 남의 집으로 보낸 자식을 어쩌다 한 번 보게 되는 부모의 마음 같다고나 할까.
전시회장에서 나와 주변 숲길을 걷는 것으로 도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달리는 차창 밖으로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인간의 작품도, 조물주의 작품도 예술이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어렵게 여울목을 지나고 이제야 제 물줄기를 찾아 고요히 흐르기 시작한 나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아름다움은 시공을 초월하고 세상은 탐구할 대상 ― 자연과 예술 ― 으로 가득 차있다. 진정한 생의 가치를 깨닫게 될 그날을 향하여 서두르지 말자고, 서서히 물드는 노을처럼 느린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어보자고 다짐해본다.
(2011 현대수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