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에는..

시이불견 청이불문

아데니움 2012. 9. 15. 16:59

 

 

 

다독의 콤플렉스를 버려라.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그저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이고

사계의 한 대목에서 소름이 돋으면 견문이 된다.

<모나리자>앞에서 '얼른 사진 찍고 가자'는 시청이고

휘슬러<화가의 어머니>에 얼어붙은 것은 견문을 한 거다.

흘려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으면 삶을 풍요롭게 사는 거다.

지식이 많은 사람 보다 감동을 잘 받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하고

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돈이 있건 없건 풍요로운 삶을 사는 증거이다.

그 친구들은 나뭇잎 하나에도 감탄하고 음악 하나 들으면서도 좋다는 걸 안다.

진짜 부유한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밤의 별 밑에서 경이로움에 소름이 돋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니

풍요로움이라는 것은 결국 감수성과 감성에서 나온다.

옛날에는 시인을 '견자' -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

라고 했다고 하니

인생의 '견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중에서.

 

사람도 사물도 자연도 마찬가지이니

지금부터라도 '시청'하지 말고 '견문'할지어다.

풍요로운 삶이 곧 행복한 삶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