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에는..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중..

아데니움 2012. 10. 9. 13:08

 

 

 

  막스 피카르트,「침묵의 세계」중에서
 
 
  농부의 생활은 침묵 속의 생활이다. 말들은 떠돌다가 도로 인간의 말 없는 움직임 속으로 돌아왔다. 농부들의 움직임은 먼 길을 거쳐오다 소리를 잃어버린, 하나의 길다랗게 늘어난 말과 같다. 농부들의 움직임이 말을 대신한다.
  추수할 때, 씨 뿌릴 때, 우유를 짤 때, 어떤 일에서나 농부는 언제나 같은 동작을 한다. 언제나 똑같은 그 동작은 그 동작이 스쳐가는 대기 속에 새겨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동작들은 그 농부의 집이나 들판의 나무들처럼 그렇게 뚜렷하게 하나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그 노동의 모든 소리들과 모든 잡음들은 그 형상 속에 빨려들어가 있다. 그 때문에 농부의 노동은 침묵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어떤 계층의 노동도 농부의 경우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말들과 쟁기를 앞세우고 느릿느릿 가고 있는 농부. 그 쟁기와 말의 걸음과 농부의 걸음 밑에 지상의 모든 경작기들이 놓여 있다. 농부와 말과 쟁기의 움직임은 말에 의존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움직임은 결코 말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즉 농부는 집에서 나올 적에 “나는 이제 밭 갈러 들로 나간다”라고 말한 적도 없으며, 실로 단 한 사람도 전답이나 말이나 밭갈이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농부의 움직임은 말하자면 하나의 별의 궤도로 변했고 그 궤도 속에 말이 흡수되어버렸다.
  (……)
  농부의 삶은 이렇게 완전히 하나의 형상으로 변함으로써, 그밖의 인간들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농부의 삶은 침묵과 형상들의 세계 바깥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연의 형상들과, 내적 삶의 형상들과 더 많이 결합되어 있다.
  때때로 한 농부가 쟁기와 암소와 함께 들판으로 나가면서,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 때, 그 다음 순간에는 하늘의 궁륭이 농부와 소를 맞아들일 것처럼 보인다. 농부가 하나의 성좌로서 이제 하늘의 지면을 밭갈이하도록 하기 위해서.
  (……)
  농부는 앞뒤로 이어지는 세대의 연속선상의 중심이며, 따라서 과거의 세대는 그 침묵 속에서 그와 함께 하며, 미래의 세대 또한 그 침묵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한다. 그밖의 다른 모든 계층의 경우에는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농부보다 훨씬 더 소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농부보다 훨씬 더 심하게 현재에 빠져 있으며, 과거와 미래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침묵으로부터 훨씬 더 많이 벗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