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진정성

아데니움 2022. 12. 20. 13:25

어렸을 때..초등학교 5학년 때쯤,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 쓰는 시간이 있었다.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형식적인 문구를 피해 정성을 다 해 쓴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였을까.
편지를 받은 군인이 학교로 찾아온 일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하여 숨었다가
그가 기다리는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는데..
고개도 못 들고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왜 나를 찾아왔을까.
다 큰 숙녀가 아니니 연애감정으로 온 건 아닐 테고
뭔가 진정성 있는 소녀의 글에 감동을 받아서? ㅋㅋ
아무튼 나는 그 이후로도 사람과 사물에 진심인데..
그건 아마도 타고난 성정 탓(덕)일 게다.
내게 글을 청탁하는 문예지 편집장도
꾸미지 않은 소탈한 문장에서 그런 '진정성'을 알아본 건 아닌지..

서평가 금정연은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에서
앤드류 포터의 책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을 보고
'진정성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허무한 삶에 의미를 되돌려줄 '최종 해결책'으로서의 진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중략)
다들 진정성을 갈망하는데 어째서 세상은 진정성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일까. 그것은 진정성 추구가 지위 경쟁의 한 형태이며 과시용 소비와 과거로의 회귀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라고 쓰고 표절문제를 말하는데
'자신이 조금만 더 생각해냈더라면 정확히 그렇게 만들었을 것 같은 너무나 완벽하게 구축된 결과물을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자기작품인 척하는 행위는 표절이 아닌 , 마치 진정한 자신의 일부인 무언가를 전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조금만 먼저 생각했더라면 내가 정확히 <진정성이라는 거짓말>과 같은 책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 썼다.

나는 위 부분에 밑줄 쫙 긋고 포터의 책을 주문했다. 그들의 글이 거짓임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