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 중에서.
순전히 이 시 하나 때문에 정호승 시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시는 노래가 되고 나도 즐겨 부르게 되었다.
시인도 외롭고, 시도 외롭고, 시를 노래하는 사람도 외롭고…. 사람들은 외로워서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쓴다.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고 작은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한다. 외로움끼리 모여 앉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익숙한 외로움을 버리고 낯선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간간이 여행가방의 먼지를 털어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 외로움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과장된 웃음도 때로는 외로움을 숨기기 위한 몸짓에 불과할 뿐. 외로움을 굳이 고독이라고 멋지게 포장해도 본질은 같은 것이다.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누가 어찌 달랠 수 있으랴만, 혼자 마시는 커피가 유독 쓰게 느껴질 때, 눈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혀끝에 부드럽게 감기는 크림맥주나 핏빛 와인 한잔을 마시며 정을 주고받는다. 그 온기가 덧없는 인생을 조금은 ‘덧있게’ 해주기에.
이제 초록의 나뭇잎이 발갛게 물들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절대 외로움의 계절, 가을이 온다. 그 한가운데서 나는 현란한 기타연주가 매혹적인 플라멩코나 말로의 재즈를 찾아 들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쓸 것이다. 몸서리치게 외로운 날엔 심오한 철학책보다는 산뜻하고 가벼운 소설(박민규나 정유정)을 읽어 생각의 폭을 좁히려 할 것이다. 그러고도 유난히 고독이 버거운 날, 커다란 가방을 꾸려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지중해쯤이면 좋을까.
살아있는 모든 외로움에 건배.
초가을 어느날..